뱀이 용이 되는 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498. 영웅들의 조건 – 누군가가 영웅이 되고자 원한다면, 먼저 뱀이 용으로 변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적당한 적수가 그에게 없는 셈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5)


니체는 영웅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뱀이 용으로 변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뱀'은 인간 내면의 나약함, 비겁함, 이기심, 혹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를 말한다. 그리고 '용'은 이러한 나약함을 극복하고, 강력한 의지와 지혜를 겸비한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진정한 영웅은 외부의 적과 싸우기 전에, 먼저 자기 안의 나약한 뱀을 용으로 변모시키는 고통스러운 내면의 투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나는 할 수 없을 거야',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자기 의심과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을 때가 있다. 그 두려움은 마치 내 안의 뱀처럼 나를 칭칭 감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때 그 뱀을 외면하거나 도망치려 하기보다, 그 존재를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애쓰는 것.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되, 그것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용기를 내는 것이 영웅이 되기위한 조건이다.

니체는 뱀이 용으로 변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적당한 적수가 그에게 없는 셈이다'라고 덧붙인다. 나는 이 말이 진정한 영웅은 자신의 내면의 크기만큼의 적수를 만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 안의 뱀을 용으로 변모시키지 못했다면, 아무리 거대한 외부의 적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적수는 나의 내면을 시험하고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보다, 단순히 나를 좌절시키는 장애물로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의 크기는 종종 우리 자신의 내면의 크기를 반영한다. 나의 내면이 작고 나약한 뱀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리 큰 기회가 와도 그것을 '적수'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감당할 수 없어 외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뱀이 용으로 변모하여 강력해졌을 때, 비로소 나는 그에 걸맞은 거대한 적수를 만나고, 그 적수와의 싸움을 통해 더욱 성장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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