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의 가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04. 가장 고귀한 위선자 – 자신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고귀한 위선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6)


우리는 흔히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여기지만, 침묵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형태의 진실, 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고귀한 위선'이라는 것은 단순히 말을 아끼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내면이나 진정한 의도를 철저히 감추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니체의 지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때로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대단하거나 고귀한 존재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자기 보호이자, 동시에 타인을 통제하려는 미묘한 시도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공이나 업적에 대해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칭찬을 받아도 겸손하게 웃어넘겼고, 자신의 어려움이나 고민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겸손하고 사려 깊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침묵은 단순히 겸손함이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고, 항상 완벽하고 강한 모습만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그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최소화함으로써 타인이 자신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못하게 했고,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더 큰 존경과 신뢰를 얻으려 한 것이다. 그의 침묵은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을 더 높은 위치에 두려는 교묘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침묵이 '고귀한 위선'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겉으로는 매우 긍정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은 미덕으로 여겨지기에,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쉽게 신뢰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그 고귀함이라는 포장지 안에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숨기고, 타인을 속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침묵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지만, 동시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교묘한 방법이기도 하다.

진실은 단순히 '말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는 것' 속에도 진실, 혹은 위선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고귀한 위선자는 자신의 침묵을 통해 타인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 그들은 마치 연극 무대 위의 배우처럼, 완벽한 가면을 쓰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가면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얼굴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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