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14. 엄정한 필연성 - 엄정한 필연성은 인간이 역사의 흐름속에서 엄정한 것도 아니며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고 통찰하게 되는 바로 그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8)
살다 보면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고 믿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치 단단한 벽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통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이는 삶의 경로들이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엄정한 필연성’이라 부르며, 그 무게에 짓눌려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곤 한다.
학창 시절, 나에게는 ‘좋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절대적인 법칙이자, 내가 반드시 따라야 할 엄정한 필연성이었다.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하면서, 나는 이 정해진 길만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과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나 역시 대학의 이름표가 아닌, 예상치 못했던 경험들을 통해 성장하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왔다. 돌이켜보면, 성공으로 가는 길은 단 하나가 아니었다. 그토록 나를 짓눌렀던 ‘필연성’은 그저 그 시절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강력한 신화에 불과했다. 그 벽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지나온 지금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이 결코 엄정하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았다는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의 역사 속에서도 반복된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한 직장에서 평생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 ‘필연’으로 여겨졌다. 이직은 배신이나 실패의 상징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희미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자유롭게 직장을 옮기고, 여러 직업을 갖기도 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필연’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믿음이었는지를 목격한다.
결국 니체가 말하는 진짜 ‘엄정한 필연성’이란, 우리 앞에 놓인 운명이나 규칙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 그것은 필연이 아니었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인간의 성찰 과정 그 자체다. 지금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믿음 역시, 미래의 내가 돌아보면 웃어넘길 수 있는 하나의 해프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