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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옳음을 찾아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by 이시영

229.

속박된 정신에서의 사항의 척도 - 속박된 정신들은 네 가지 종류의 사항에 대하여 그것들이 옳다고 말한다. 첫째, 영속성이 있는 모든 사항은 옳다. 둘째, 우리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모든 사항은 옳다.

셋째,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오는 모든 사항은 옳다. 넷째, 그것을 위해 우리가 희생을 치른 모든 사항은 옳다. 예를 들어 이 마지막 것은, 왜 국민의 의지를 거역하여 시작된 전쟁이 우선 희생이 치러지면 곧바로 열광적으로 계속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 책세상, 2019. p.232)


니체의 아포리즘들은 나의 답답한 생각을 날카롭게 지적해서 뜨끔할 때가 많다. 나는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 세상을 너무 좁은 시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변함없고, 또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것들만을 무작정 '옳다'고 믿어버리는 시선으로 살고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습이나 전통, 권위 같은 것들은 왠지 모르게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오랜 시간 버텨왔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게 '옳다'는 보증서는 될 수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경우가 얼마나 많았나? 노예 제도나 여성 차별 같은 것들은 과거엔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지금 누가 그걸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답답한 생각에 갇히면 변화를 두려워하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커지는 것 같다. 새로운 생각이나 도전은 왠지 내 안정적인 세상을 흔들까 봐 겁이 나서 예전부터 내려오던 질서나 가치관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그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낡은 가구를 못 버리고 곰팡이 핀 방에 그대로 두는 것처럼.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꼭 쓸모 있거나 좋은 건 아닌데도 말이다.


"나한테 방해되지 않으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어떨까? 이건 정말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기준이 아닐까 싶다. 내게 이익이 되거나 편안하면 그게 옳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사회 전체의 피해는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 예를 들어, 환경을 망가뜨리는 기업이라도 당장 내가 쓰는 물건을 편하게 만들어준다면, 우리는 그걸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불편하게 들리면, 그들의 존재 자체를 외면하거나 깎아내리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들이 어쩌면 너무 주관적이고 겉핥기식이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할 수 있다. 오래된 것이라는 이유로 변화를 막는 낡은 족쇄가 될 수도 있고, '나에게 해롭지 않다'는 핑계로 사회의 불의를 외면하는 비겁한 변명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옳음'은 시간의 흐름이나 나만의 편안함 같은 얄팍한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보편적인 가치,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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