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함의 중요성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32. 더 중요한- 인간은 설명이 된 명백한 사항보다 설명할 수 없는 불투명한 사항을 더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3)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명확하게 설명된 사실보다 모호하고 신비로운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왜 이런 경향이 생겨났을까? 명확한 사실은 우리에게 더 이상 탐구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고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 있으니, 우리는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불투명한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그 의미를 스스로 찾도록 자극한다. 미지의 영역은 우리를 능동적인 참여자로 만들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이처럼 불투명함은 단순히 알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를 창조적인 주체로 만드는 힘이 있다

추상화는 구체적인 대상을 명확하게 묘사하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관람객은 화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모호함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투영하며 작품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명확한 풍경화보다 불투명한 추상화가 더 큰 철학적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다. 종교적 믿음이나 신화 속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오히려 더 깊은 믿음을 끌어내어 그것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의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졌을 때보다, 진실이 가려져 의혹이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더 큰 관심을 갖고 그 사건에 몰두한다. 명백한 정보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불투명한 진실'을 파헤치려는 욕구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무언가를 탐구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과 연결된다.


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설명할 수 없는 불투명한 영역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외면하는 대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태도가 나를 더 깊이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진정한 중요성은 이미 주어진 명백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찾아내야 할 불투명함 속에 있다는 것을 이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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