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평가하는 기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33. 표명된 봉사에 대한 평가 -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베푸는 은혜에 대하여, 우리는 그 사람이 그것에 부여한 가치에 따라 평가하지, 그것이 우리에 대해 가지는 가치에 따라 평가하지는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3)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그 도움의 '실질적인' 가치보다 베풀어준 사람이 그 행위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했는가에 따라 감사함을 느낀다. 즉, 은혜를 평가하는 진정한 잣대는 행위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상대방의 마음이라는 통찰이다.

친구가 내게 만 원을 빌려줬을 때 그 친구에게 만 원이 아무렇지 않은 돈이었다면,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며칠 내에 갚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만 원이 그 친구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면 어떨까? 당장 밥을 굶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돈을 내어준 것이라면, 나는 그 만 원의 가치를 단순한 액면가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만 원이라는 돈의 가치보다, 나를 생각하는 그 친구의 '마음'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깊은 감사함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그 사람이 부여한 가치'에 따라 은혜를 평가하는 우리의 심리다.


생일 선물로 받은 값비싼 물건보다, 손수 만든 카드나 작은 선물에 더 큰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다. 값비싼 물건은 우리가 얻는 가치가 높을 수 있지만, 손수 만든 선물에는 선물을 준비한 이의 정성과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물을 돈으로 환산하기보다 그 마음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가 베푼 은혜를 물질적인 가치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서운함은 내가 준 가치와 상대방이 느낀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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