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 존경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34. 불행 - 누가 어떤 사람에게 "그러나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보통 항의할 정도로, 불행에 들어 있는 특별한 명예(마치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천박함, 겸허함, 평범함의 표시인 것처럼)는 대단히 크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3)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라지만, 정작 누군가에게 '행복하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낀다. 반대로 '불행하다'는 사람에게는 깊이와 진정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불행을 겪는 것이 마치 고귀한 경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술과 문학에서 우리는 고통을 겪는 주인공에 깊이 공감한다. 그들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삶의 본질을 깨닫는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운 인물의 이야기는 종종 피상적이고 평범하게 여겨진다. 불행을 겪어야만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도 이런 심리가 드러난다. 누군가에게 "요즘 정말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아니에요, 그냥 그래요"라고 겸손하게 대답한다. 행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깊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요즘 너무 힘들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더 큰 관심과 공감을 보인다. 내가 겪는 불행을 통해 내 삶이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니체는 이런 심리의 근원을 '특별한 명예'라고 지적한다. 행복은 너무 흔한 것이기에,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천박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불행은 특별하고 고귀한 경험으로 포장되어, 불행을 겪는 사람에게 명예를 부여한다. 불행은 '나는 평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니체의 이 아포리즘은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행복을 경계하는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를 꼬집는다. 우리는 불행을 통해 얻는 '특별한 명예'에 중독되어, 진정한 행복을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용기는 불행 속에서 허영심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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