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시의 무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49. 멸시-인간은 스스로를 멸시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멸시에 상처받기 더 쉽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6)


우리는 스스로를 가혹하게 평가하고 깎아내릴 때보다, 타인이 던지는 무심한 경멸의 시선에 훨씬 더 깊은 상처를 받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외부에서 오는 멸시는 우리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왜 우리는 타인의 멸시에 더 쉽게 무너지는가? 그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그들의 인정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다. 따라서 타인의 멸시는 단순히 불쾌한 감정을 넘어, '나는 이 사회에 속할 가치가 없다'는 존재론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더 노력하면 된다'고 다짐하며 자신을 다독인다. 하지만 상사나 동료의 무시와 경멸이 담긴 한마디에는 쉽게 상처받는다. '나의 부족함'이라는 내적 평가를 넘어, '타인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외적 평가가 우리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이다.

니체는 여기서 '멸시'가 가진 특별한 힘을 지적한다. 자기 자신을 멸시할 때, 우리는 '나는 이성적이고 겸손한 사람'이라는 일종의 자존심의 방어막을 칠 수 있다. 즉, 스스로를 멸시하는 행위를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멸시는 이 방어막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예상치 못한 외부의 공격에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자신의 허약한 자존심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이 아포리즘은 우리가 온전하고 강한 자존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타인의 시선과 멸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내면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외부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여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멸시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 우리는 온전한 자존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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