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248.
절망적인 진보에 대한 위로의 말- 우리는 동요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새로 얻은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우리는 오래된 것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용감해져야 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귀착될 것이다.-다만 우리는 걷자.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19. p.247)
"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용감해져야 하는 수밖에 없다.” 이 문장은 마치 오랫동안 굳어 있던 나의 생각을 부수는 날카로운 망치 소리처럼 다가온다. 과거에 대한 덧없는 미련과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잔상 속에서 머뭇거리던 나에게, 니체의 단호한 선언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와 같다. 잔잔한 물결 위를 순항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거센 폭풍우와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다. 항해 도중 방향을 잃고 잠시 멈춰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 좌초의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순간일지라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이미 지나온 항로, 즉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흘러간 시간은 붙잡을 수 없는 물과 같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 손안에 담을 수 없다. 우리는 오직 현재라는 닻을 내린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고 돛을 올려야만 한다.
내 안에는 떨쳐내지 못한 과거의 그림자들이 자주 어른거린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조금 더 용기를 냈더라면, 혹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만약’이라는 후회의 조각들은 때때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현재의 나를 찌르고 발목을 붙잡는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아쉬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 그리고 흘러가버린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은 종종 현재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앗아가곤 한다. 하지만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이미 과거라는 항구를 떠나왔고,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배는 이미 불태워졌다. 이제 남은 것은 미지의 미래라는 넓은 바다를 향해 용감하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불태워버린 배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수 없다는 잔인한 진실을 일깨우지만, 동시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우리는 과거의 실수에 발목 잡히기보다는,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