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확실성의 증거로서의 성실-한 이론의 창시자가
그 이론에 대해서 40년 동안이나 불신감을 품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 이론의 우수함을 완벽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청년기에 생각해 낸 철학을 결국 과소평가함으로써
얄보지 않았던 철학자는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이러한 의견의 변화를 공공연하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명예심 때문이거나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위한 부드러운 보호심 때문일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책세상, 2019. p.252)
한 이론을 40년 동안 믿는 것은 그 이론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철학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젊은 시절에 만들었던 이론에 대해
나이가 들어 의심을 품었다.
그렇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의 철학에 대한 의심을 드러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배려심을 가장한 자존심이 상해서였을 것이다.
확실성, 성실. 이 단어들은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당당하게 들린다.
절대적인 신뢰감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니체의 망치를 휘두르면 이 단어들 속에 숨겨진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드러난다.
겉으로는 객관성과 진실성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이 단어들은 때로는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려는 자만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증거가 제시되어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제부터 '확실하다', '성실하다' 등의 단어를 만나면
의심부터 하는게 좋다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