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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이라는 착각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by 이시영

255. 동시에 일어나는 것에서의 미신-동시에 일어나는 그 무엇은 서로 관련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친척 한 사람이 멀리서 죽게 되면, 같은 때에 우리는 그의 꿈을 꾼다-따라서 그렇다고 믿는다! 하지만 수많은 친척이 죽는다 해서 그들의 꿈을 다 꾸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책세상,2019. p.253)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예상치 못한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기묘하게 겹쳐지는 사건들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거나, 설명할 수 없는 연결고리를 발견하려 애쓰기도 한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일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성은 필연적인 인과관계의 증거라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평소와 다른 불길한 꿈을 꾸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꿈이 마치 예언이라도 된 듯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반대로, 좋은 꿈을 꾸고 기대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리면, 그 꿈의 신비로운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내가 예지몽의 능력이 있다고 믿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평범한 꿈들과 그저 그런 결과들은 기억 속에서 쉽게 휘발되고, 오직 ‘맞았던’ 우연만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덫에 걸렸던 것은 아닐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우연한 사건 속에서도 질서를 찾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일어나는 두 가지 사건 사이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엮어내면,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 조금이나마 통제 가능하고 이해하기 쉬워진다고 믿는 것이다.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을 연결하는 상상력은 때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그 이야기가 객관적인 근거 없이 개인적인 믿음이나 감정에만 의존할 때, 우리는 미신의 늪에 빠지기 쉽다. 마치 어두운 밤길에 스치는 그림자를 보고 낯선 존재를 상상하듯, 우리는 무작위적인 동시성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을 쫓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매 순간 일어나고 있으며, 그중 일부가 우연히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과 뒷면이 번갈아 나오는 것이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듯, 삶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의 동시성은 대부분 단순한 확률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특정한 동시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마치 넓은 밤하늘의 별들 사이에서 특정한 패턴을 발견하고 별자리를 만들어내듯, 인간의 인지적 편향과 의미 부여 본능이 만들어낸 착각일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시간에 배운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사건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 적이 있다.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라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과, 오랜 시간 동안 일본 사회에 뿌리 깊게 존재했던 조선인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동시에 발생하자, 이 두 사건 사이에 터무니없는 인과관계를 설정하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 확산으로 무고한 조선인들이 끔찍한 학살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는 우연한 동시성이 인간의 편향된 믿음과 결합하여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개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거나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쉽게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우연한 동시성에서 섣부른 의미를 찾으려 한다.


우연은 그저 우연일 뿐이며, 모든 동시성이 필연적인 연결고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덧없는 우연의 장막 뒤에 숨겨진 미신을 걷어내고, 진실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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