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척추를 세우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75. 직업 - 직업은 삶의 척추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4)


우리는 직업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곤 한다.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고 월급을 받아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즐기기 위한 필요악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니체는 “직업은 삶의 척추이다”라는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이러한 통념을 뒤흔든다. 이 말은 직업이 단순히 삶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지탱하고 형태를 잡아주는 가장 중심적인 뼈대임을 일깨운다.


척추는 우리 몸을 바로 서게 하고, 모든 신경계를 연결하며, 우리가 움직일 수 있도록 지지하는 핵심 기관이다. 직업 역시 우리 삶에서 똑같은 역할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동료들과 협력하며 과업을 수행하고, 퇴근 후 휴식을 취하는 일상의 리듬은 직업이라는 척추가 있기에 가능하다. 직업은 우리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 척추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무정형의 덩어리처럼 무너져 내리기 쉽다.


평생을 철도청 기관사로 헌신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이 의미가 명확해진다. 나의 아버지는 퇴직 후 한동안 깊은 상실감에 시달리셨다. 매일 아침 정복을 입고 출근하던 일상, ‘기관사님’으로 불리며 수많은 승객의 발이 되어주던 사회적 역할, 수십 년간 함께 선로를 누빈 동료들과의 유대감. 이 모든 것이 직업이라는 척추를 이루는 뼈마디들이었다. 퇴직은 그 척추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과 같았다. 아버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몰라 한동안 방황하셨다. 삶의 중심 기둥이 사라지자, 일상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위태로워 보였다. 나의 아버지는 새로운 ‘척추’를 세우지 못하고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지셨다.


물론 모든 직업이 건강한 척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직업은 오히려 뒤틀리고 통증을 유발하는 척추와 같다. 그런 직업은 삶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짓누르는 고통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척추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척추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


결국 니체의 통찰은 우리가 직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직업을 단지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길 것인가, 아니면 나의 삶을 곧게 세우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중심축으로 만들 것인가. 건강한 척추가 몸 전체에 활력을 주듯, 좋은 직업은 우리의 삶 전체를 단단하고 의미 있게 만든다. 그렇기에 직업을 찾고 가꾸는 일은 단순히 돈벌이를 찾는 것을 넘어, 내 인생의 척추를 바로 세우는 가장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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