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문턱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94. 철학의 신참자 - 사람들이 어떤 철학자의 지혜를 막 받아들였을 때, 그들은 마치 지신들이 개조되어서 위대한 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지혜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만 발견하게 되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의 새롭고 알려지지 않은 판결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법전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제 재판관처럼 행동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0)


니체가 묘사하는 ‘철학의 신참자’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10여 년 전, 내가 처음 니체 철학을 만났을 때 바로 그 모습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니체 전집을 펼치는 것조차 싫어했고, ‘신은 죽었다’고 말한 허무주의자라는 얄팍한 편견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그의 인간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무효화시킬 만큼 강력하게 다가왔다. 이전까지 혼란스럽고 복잡하게만 보였던 세상이 니체라는 하나의 원리로 명확하게 정리되는 듯한 느낌은 짜릿한 지적 쾌감을 선사했다. 이 쾌감은 곧바로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만드는 우월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니체를 오해하는 주위 사람들의 편견을 고쳐주려 애썼고, 모든 대화 속에서 나의 새로운 깨달음을 기준으로 판결을 내리려 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꼬집은 ‘재판관처럼 행동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신참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진정한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앎의 깊이가 아니라, 얕은 이해에서 비롯된 지적 허영심에 불과하다. 진정한 지혜는 하나의 정답을 찾았다는 확신이 아니라,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깨닫는 겸손함에서 시작된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던 것처럼, 앎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철학의 신참자는 자신이 이제 막 발견한 작은 조각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그 조각의 크기로 세상을 재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러한 ‘재판관’의 태도는 결국 자신을 고립시킨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삶을 존중하기보다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비판하기에, 진정한 소통과 배움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버린다. 철학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과정이다. 신참자의 오만한 태도는 철학의 본질을 왜곡하고, 성장의 문을 닫아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니체는 우리에게 지식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앎을 얻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권위의 상징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겸손한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가? 철학의 문턱을 넘어서는 진정한 첫걸음은, 손에 든 법전을 내려놓고 오만한 재판관의 옷을 벗어 던지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성장의 두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