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96. 전쟁의 이유와 그와 비슷한 것 -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기 위해 냉정한 결정을 내리고 전쟁의 이유를 찾는 군주는, 어머니를 몰래 바꿔놓고 자신의 아이에게 앞으로 어머니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는 아버지와 같다. 공공연히 알려진 우리의 거의 모든 행위들의 동기도 이렇게 몰래 바뀐 어머니들이 아닐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1)
역사 속 수많은 전쟁은 ‘정의’, ‘평화’, ‘해방’과 같은 고결한 명분을 내세웠다. 이것이 군주가 백성들에게 내미는 ‘새로운 어머니’다. 하지만 그 가면 뒤에는 영토 확장, 경제적 이익, 정치적 권력욕 같은 날것의 욕망, 즉 ‘진짜 어머니’가 숨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도자들은 이 진짜 동기를 교묘하게 숨기고 대중이 받아들이기 쉬운 숭고한 이유를 포장해서 제시한다. 사람들은 그 명분에 감동하고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지만,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숨겨진 욕망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니체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명분을 찾는 군주를, 진짜 어머니를 몰래 숨기고 아이에게 새로운 사람을 어머니라고 말하는 아버지에 비유한다.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가짜 어머니'를 내세워,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불편한 욕망이라는 '진짜 어머니'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은 사회적으로 칭찬받는 ‘새로운 어머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쩌면 실패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나,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라는 ‘진짜 어머니’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며 친구에게 날카로운 조언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정 어린 걱정’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면, 그 안에는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거나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라는 본심이 숨어있을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한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후, 가족들은 처음에는 그를 돌보며 가족애와 책임감이라는 ‘새로운 어머니’를 내세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레고르가 경제적, 정신적 짐이 되자, 그들의 내면에 숨어있던 ‘진짜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이 끔찍한 짐을 벗어 던지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이다.
결국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흉칙하고 거추장스러운 벌레로 여기며 그의 죽음을 방치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지만, 그 이면에는 벌레가 된 가족 구성원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은 냉혹한 본심이 자리하고 있다.
니체와 카프카의 성찰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것을 요구한다.
내가 지금 내세우고 있는 이 명분은 과연 진실한가?
그 아름다운 가면 뒤에 나는 어떤 욕망을 숨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