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02. 장식으로서의 폐허 - 많은 정신적 편력을 거친 사람들은 몇 가지 견해와 습관들을 과거 상태로 계속 유지한다. 그것들은 수수께끼같은 고대 유물조각이나 잿빛 성벽처럼 그대의 새로운 사상과 행위 속에서도 돌출해 있다 : 그것은 흔히 그 지역 전체의 장식품이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4)
나는 가끔 과거를 완벽하게 지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SNS 속 반짝이는 타인의 삶과 나를 비교하며, 흑역사라 부르는 어설펐던 시절의 기억을 도려내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촌스럽게 느껴지는 옛 취향, 버리고 싶은 낡은 습관, 미숙했던 인간관계의 흔적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매끈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수많은 생각의 변화와 마음의 여정을 통과해 온 사람의 내면에는 과거의 생각이나 습관 몇 가지가 화석처럼 남기 마련이다. 새로운 생각과 다짐 속에서도 불쑥, 옛 모습이 고개를 내민다. 이성적으로는 극복했다고 믿었던 지난 사랑의 아픈 기억이 새로운 관계 앞에서 주저하게 만들 때,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한다. 이러한 ‘폐허’들은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비효율적이며, 현재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은 한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변화하며 지금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자, 그가 걸어온 시간의 결이 새겨진 나이테와도 같다.
이 낡고 어색한 흔적들을 ‘장식’이 되는 이유는 반짝이는 새것만이 유일한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 안에 남은 과거의 흔적들은 그의 삶에 독특한 서사를 부여하고, 그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 만든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새로워 보이는 사람보다, 어딘가 어설프고 낡은 구석이 있는 사람에게서 더 깊은 인간미와 신뢰를 느끼듯이 말이다. 과거의 실패라는 폐허는 현재에 겸손과 공감 능력을 가르치는 값진 훈장이 되고, 이제는 쓸모없어진 오래된 지식이라는 폐허는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창의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 폐허들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한 사람을 더욱 입체적인 존재로 빚어낸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어떤 길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말해주는 인생의 가장 확실한 이정표다.
낡은 생각, 오래된 버릇, 아물었던 상처까지도 모두 지금의 우리를 꾸며주는 소중한 장식이다. 이 모든 과거의 조각들이 현재와 만나,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라는 특별한 작품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