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03. 사랑과 명예 - 사랑은 갈망하는 것이며 두려움은 회피하는 것이다. 같은 사람에게서 적어도 같은 시간에 사랑받고 동시에 존경받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사람은 힘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즉 힘을 두려위하기 때문이다 : 그의 상태는 외경심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 어떤 힘도 인정하지 않으며 나누고 배제시키며 위와 아래를 구별하는 그 무엇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 명예욕이 강한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 비밀스럽게 또는 공공연하게 반항적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5)
존경이라는 감정의 뿌리에는 ‘힘’에 대한 인식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존경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이 가진 힘이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묘한 두려움, 즉 ‘외경심’을 동반한다. 학식이 깊은 스승이나 카리스마 있는 상사를 존경할때 그들 앞에서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다듬는다. 그들이 가진 지식, 경험, 권위가 내 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존경은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위와 아래라는 미세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사랑은 존경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사랑의 본질은 힘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경계를 허무는 데 있다. 사랑은 상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갈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우리는 가장 부끄러운 약점이나 어설픈 모습도 숨기지 않는다. 힘이나 권위는 사랑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자신의 나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사랑은 위아래의 관계가 아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보는 관계를 지향한다.
이것이 사랑과 존경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하기 어려운 이유다. 존경이 만들어낸 건강한 거리감과 긴장감은, 사랑이 추구하는 완전한 솔직함과 친밀함 속에서 녹아 사라진다. 존경받는 사람이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그를 향한 외경심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는 인간적인 연민이나 사랑이 싹튼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권위적인 태도로 힘을 내세운다면, 우리는 친밀감 대신 서운함과 거리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니체가 “명예욕이 강한 사람들은 사랑받는 것에 반항적이다”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존경을 통해 얻은 자신의 힘과 권위가 사랑이라는 평등한 감정 속에서 해체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