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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와 학문의 경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264. 재기 있는 사람은 과대평가 되거나 과소평가 된다 - 학문적이지는 않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옳은 길에 있든 잘못된 길에 있든 정신의 모든 징후를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교제하는 사람이 자신들을 재기로 즐겁게 해주고 격리 해 주며 감격시키고, 진지함과 농담으로 매료시키며, 어쨌든 가장 힘 있는 부적으로 권태에서 지켜주기를 바란다. 학문적인 본성을 지닌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학문의 정신에 의하여 수많은 착안들을 가지고 있는 재능이 가장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보잘것없는 학자들은 재기 넘치는 삶들을 멸시하고 불신하게 되고, 재기 넘치는 사람들은 흔히 학문을 혐오하게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책세상,2019. p.263)


나는 가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이 가진 독특한 빛깔에 매료되곤 한다. 어떤 이들은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로 좌중을 압도하고, 또 어떤 이들은 깊이 있는 지식과 논리로 사유의 숲을 거닐게 한다. 우리는 흔히 재기 넘치는 사람들에게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고, 학문적인 사람들에게서 굳건한 신뢰를 얻는다. 하지만 문득, 이 두 유형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긋나는 순간들을 목격할 때가 있다. 왜 그들은 서로를 과대평가하거나 때로는 과소평가하며, 심지어 멸시하고 불신하게 되는 걸까? 나는 이 질문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니체는 이러한 인간 본연의 단면을 꿰뚫어보며, 재능이라는 것이 단순히 타고나는 것을 넘어선 복잡한 관계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재기 있는 사람들은 마치 바람처럼 자유롭다. 그들은 순간적인 영감과 창의성을 중시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추구한다. 나는 그들이 무엇보다도 '자신을 재기로 즐겁게 해주고, 권태에서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는 니체의 통찰에 공감한다. 그들은 예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하며, 때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들의 생각은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하며, 삶의 모든 징후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보잘것없는 일상의 순간에서조차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풀어내는 이들을 만날 때면, 나는 마치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들은 권태라는 가장 강력한 적을 물리치는 부적처럼, 우리를 즐거움과 감격으로 채운다.

반면, 학문적인 본성을 지닌 사람들은 이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그들은 학문의 정신에 따라 재능이 가장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며,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데 몰두한다. 그들은 과학, 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체계적인 지식을 구축하고, 인류의 지적 발전에 기여한다. 나는 그들의 꾸준하고 끈질긴 탐구 정신에 경외심을 느낀다. 그들은 번뜩이는 착안들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엄격한 검증의 과정을 거친다. 마치 거대한 건축물을 짓듯, 단단한 기초 위에 견고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정교한 지붕을 얹는 지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들의 노력은 때로는 지루하고 더뎌 보이지만, 그 결과물은 인류의 지적 자산이 되어 시대를 초월하는 견고한 진실을 밝힌다.

문제는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유형의 사람들이 종종 충돌하고 대립한다는 점이다. 재기 넘치는 사람들은 학문적인 사람들을 지루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비판하며, 학문적인 사람들은 재기 넘치는 사람들을 가볍고 허황된 존재로 간주한다. 니체가 '보잘것없는 학자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이론에만 집착하고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학자들을 비판하고, '재기 넘치는 삶'이라는 표현을 통해 단순히 흥미를 추구하는 가벼운 삶을 비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라는 메시지다. 재기 넘치는 사람들은 학문을 혐오하게 되고, 보잘것없는 학자들은 재기 넘치는 삶들을 멸시하고 불신하게 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은 역사적으로도 반복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우리 사회의 그림자다.

나는 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잣대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치 있는 사람은 학문의 엄격함 속에서 숨 막힘을 느끼고, 학문적인 사람은 재치의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혼란을 느낀다. 하지만 어쩌면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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