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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낡음과 새로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268. 개인의 투쟁사에 대해서 - 여러 문화들을 거쳐가는 개별적인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두 세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혈연 관계의 가까움이 이 투쟁을 더 첨예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한 쪽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상대의 내면을 가차없이 투쟁에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투쟁은 각 개인 속에서도 가장 격렬한 것이 된다. 여기에서는 모든 새로운 단계가 잔인할 정도로 부당하게

그리고 그 수단과 목적들을 오해한 채 과거의 단계들을 무시해버린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책세상,2019. p.266)


나는 가끔 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한다.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가까운 혈연으로 묶여 있지만, 때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격렬한 충돌을 경험하는 곳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권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아버지와, 새로운 가치와 변화를 갈망하는 아들의 충돌은 예로부터 인간 드라마의 주요한 모티프였다.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첨예하게 맞설 수밖에 없을까? 혈연이라는 끈은 그 어떤 관계보다 강력하게 개인을 묶어매지만, 동시에 서로의 익숙함은 상대방의 약점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고,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간극을 더욱 크게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거울처럼 서로의 민낯을 비추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잔인할 정도로 부당하게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고 오해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아들을 이해시키려 노력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낡은 가치관과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진의는 왜곡되고, 감정적인 골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 투쟁이 각 개인 속에서도 가장 격렬한 것이 된다는 통찰에 깊이 공감한다. 왜냐하면 한쪽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상대의 내면을 가차없이 투쟁에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파고들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마치 숲속의 고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작지만 그 파장이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것처럼, 혈연 관계의 작은 균열은 깊은 내면의 동요를 불러온다.

나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더라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때로는 든든한 지지대였지만, 때로는 넘기 힘든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버지 세대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관과 내가 속한 시대의 새로운 흐름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했다. 아버지의 조언은 당신의 삶을 통해 얻은 귀한 지혜였지만, 나는 그것이 낡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반발하곤 했다. 아버지는 나의 새로운 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염려하는 눈빛을 보내셨다. 혈연이라는 가까움은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다른 세계관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만들고, 때로는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다.

이러한 세대 간의 투쟁은 비단 가족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이 투쟁이 더 나아가 우리 개개인의 내면에서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 안에는 낡은 습관, 과거의 경험, 익숙한 사고방식, 즉 '아버지의 유산'이 존재한다.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변화하려는 욕구, 미래를 향한 열망, 즉 '아들의 새로운 비전' 또한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이 둘은 마치 밤과 낮처럼 공존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충돌한다. 새로운 생각과 익숙한 행동 사이의 갈등,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과거의 나를 벗어나 새로운 나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은 모두 이 내면의 투쟁이다.

삶의 모든 새로운 단계는 잔인할 정도로 부당하게, 그리고 그 수단과 목적들을 오해한 채 과거의 단계들을 무시해버린다. 이는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때로는 과거의 나를 부정하고, 익숙한 것들과 단절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로 이 갈등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성장을 이룬다. 낡음과 새로움의 끊임없는 충돌은 우리를 멈춰 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나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우리 내면의 낡음과 새로움 사이의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본질이다. 그것은 단순히 파괴적인 충돌이 아니라, 성장과 변화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그 속에서 진정한 이해를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의 삶 속에서 새로운 단계가 잔인하게 과거를 무시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지혜와 성숙함을 얻는다.

당신은 지금, 당신 안의 '아버지'와 '아들' 중 어느 쪽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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