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함의 공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06. 깊은 고통을 향한 갈망 - 정열은 지나간 뒤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을 남기고 사라질 때에도 유혹하는 눈길을 던진다. 정열의 채찍에 맞았던 것이 일종의 쾌감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그에 비해 온화한 감각은 진부하게 생각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진부한 쾌감보다는 오히려 과격한 불쾌감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6)


누구나 평온한 삶을 꿈꾼다. 상처받지 않고, 마음 아플 일 없이 잔잔한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고통은 피해야 할 대상이고, 안정은 붙잡아야 할 가치라고 믿는다.

태풍의 눈 속에 있을 때는 그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격정적인 사랑, 온몸을 던져 추구했던 뜨거운 목표, 혹은 온 마음을 쏟아부었던 예술적 열정의 한가운데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들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지독한 불안과 애타는 질투, 쓰라린 좌절과 밤샘 눈물이 뒤섞여 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마침내 폭풍은 지나간다. 삶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는다. 더 이상 마음 졸이며 누군가를 기다릴 필요도, 쓰린 속을 부여잡고 밤을 새울 일도 없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평화로운 상태다. 하지만 이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문득 지루함과 무기력감을 느낀다. 잔잔한 호수 같은 일상은 안전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단조로움이 우리를 잠식해 온다.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진부하게 생각되는 온화한 감각’이다. 모든 것이 괜찮지만, 그 어떤 것도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 상태. 살아있지만, 살아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다.


바로 그때,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되새기기 시작한다. 격렬했던 아픔의 기억을 꺼내 들고, 사라진 정열이 남긴 흉터를 어루만진다. 니체의 통찰처럼, 정열의 채찍에 맞았던 것이 실은 ‘일종의 쾌감’을 주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픔 그 자체가 즐거웠다는 뜻은 아니다. 그 고통은 내가 얼마나 무언가를 뜨겁게 원하고,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으며,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기쁨과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이 교차하던 순간들은, 적어도 내가 내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진부한 쾌감보다는 오히려 과격한 불쾌감’을 원하게 되는 역설에 빠진다.


인간이 갈망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의 ‘깊이’다. 때로는 깊은 고통만이 우리를 삶의 가장 깊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얕은 물가에서 안전하게 발을 담그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거친 파도에 몸을 던져야만 바다의 거대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지나간 아픔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아픔과 함께했던 삶의 강렬한 밀도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갈망일지도 모른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며 안전한 울타리 안에만 머무는 삶은, 어쩌면 고통보다 더 잔인한 무감각의 형벌일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상처받을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