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19. 멸시의 불 속에서 - 마음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치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견해들을 감히 말하려고 할 경우, 그것은 독립으로 향하는 새로운 한 걸음이다. 그때는 친구와 아는 사람들도 대개는 걱정할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은 이 불을 통과해야 한다. 그들은 그 후에 월씬 더 많이 자기 지신에 속하게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33)
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때때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바로 사회가 용인하는 생각의 틀, 즉 '당연함'이라는 이름의 벽이다.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공감은 나에게 따뜻한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나도 모르게 나의 사고를 제약하고 틀 안에 가두기도 한다.
기존의 믿음 체계를 뒤흔드는 견해들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그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세계의 기반을 흔든다. 평온함을 깨뜨리고 예측 불가능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런 견해를 위험하고 불온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말하는 행위 자체를 금기시하고 '치욕적'이라고 낙인찍는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관계가 틀어질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니체가 지적하듯, 주류와 다른 의견을 말하면,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사게 된다. 이 걱정은 때로는 나를 아끼는 진심 어린 염려일 수 있다. '괜히 나서서 손해 보지 마라',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좋다'는 말 속에는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걱정 이면에 불편함이나 불안감이 숨어있기도 하다. 나의 '위험한' 생각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안정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말이다. 친구들의 걱정은 때로는 따뜻한 지지가 아니라, 오히려 다시 안전한 틀 안으로 돌아오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될 수도 있다.
니체는 이러한 사회적 반응을 '불'에 비유한다. 금기시된 견해를 말하는 사람은 이 멸시와 걱정, 때로는 비난과 고립이라는 뜨거운 불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이다. 특히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은 이 과정을 더욱 혹독하게 겪을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의 비범함은 종종 오해받고 질투의 대상이 되며, 사회의 획일적인 기준 속에서 더욱 날카로운 멸시의 불길에 휩싸일 수 있다.
멸시의 불 속을 걷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지적이고 정신적인 독립을 향한 필연적인 여정일 수 있다. 사회가 '치욕적'이라고 규정한 견해를 감히 말하는 용기는, 단순히 반항적인 태도를 넘어 진실을 추구하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