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21. 요령으로서의 사랑 – 새로운 그 무엇을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은(그것이 인간이든, 사건이든, 책이든) 이 새로운 것을 가능한 모든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적대적이고 불쾌하며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서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나아가서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 따라서 예를 들어 사람들이 어떤 책의 저자에게 최대의 점수를 주고 경기할 때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가 목표에 이르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새로운 사항의 중심부까지, 즉 그 원동력이 되는 점까지 다가간다 :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사항을 터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까지 가면 오성이 뒤에서부터 제한을 가한다. 그 과대평가, 비판적인 추를 일시적으로 떼어놓는 것은 바로 어떤 일에 대한 마음을 밖으로 유인해내는 요령이었을 뿐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34)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책을 읽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건을 마주할 때,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우곤 했다. 상대방의 사소한 결점을 찾아내고, 책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며, 사건의 부정적인 측면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나를 똑똑하고 예리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 사람의 진정한 매력이나, 그 책이 가진 본질적인 울림, 그 사건의 핵심을 놓쳐버린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마치 멋진 선물을 받고도 포장지의 흠집에만 온통 신경을 쓰느라, 정작 그 안의 내용물은 확인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음과 같았다.
이런 나의 냉소적인 습관에, 니체는 새로운 그 무엇을 진정으로 알고자 한다면, "이 새로운 것을 가능한 모든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적대적이고 불쾌하며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서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나아가서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앎이나 인식은 차가운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니체는 뜨거운 사랑을 앎의 방법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고도의 '요령(Knack)'이자 전략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의 장점은 보지 못하고 단점만 확대해서 보게 된다. 반대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소한 단점은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의 가장 빛나는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된다. 니체는 바로 이 '사랑의 렌즈'를 의식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어떤 책의 저자에게 최대의 점수를 주고 경기할 때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가 목표에 이르기를 열망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가지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영화를 '이건 분명 망작일 거야'라는 마음으로 보면, 영화 내내 단점만 보이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나에게 감동을 줄 거야'라고 기대하며,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사소한 흠집은 잊히고 그 영화가 가진 진심 어린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하는 사랑의 '요령'은, 그 대상의 "중심부까지, 즉 그 원동력이 되는 점까지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모든 사람, 모든 책, 모든 사건에는 그것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원동력'이 있다. 그것은 작가의 열망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진실된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선은 이 중심부에 도달하기 전에, 겉을 둘러싼 '불쾌하고 잘못된 것들'에 가로막혀 길을 잃게 만든다.
내가 만약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말투나 옷차림 같은 비본질적인 것들로 그를 판단하고 미워했다면, 나는 영원히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따뜻함이나 지혜를 알 기회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결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다. 겉면의 가시가 아닌, 그 가시가 감싸고 있는 속살을 먼저 보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다.
이런 사랑의 태도를 통해 그 대상의 '원동력'에 도달했을 때, 즉 "그 사항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이성(오성)'이 뒤에서부터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성은 처음부터 상대를 난도질하는 칼이 아니라, 핵심을 파악한 후에 전체를 조망하고 정리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니체의 글들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철학서인지 시집인지 문집인지 알 수 없어서 여러 번 덮어버렸다. 하지만 난해하고 익숙하지 않은 문장들을 애써 잊고, 니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상상하려 노력했다. 그러자 그 중심에서 삶을 긍정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그의 본마음이 읽혔다.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마음을 열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원동력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비판적인 태도를 '일시적으로 떼어놓는' 지적인 용기다. 나는 오늘, 내가 새롭게 마주하는 것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다시금 생각한다. 불편함과 결점에서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그 중심을 향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다가갈 준비가 되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