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의 역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23. 깊이 있는 사람 - 인상들을 깊이 파 들어가는 데에 강한 사람 – 사람들은 그들을 일반적으로 깊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 은 어떤 갑작스러운 일에도 비교적 침착하고 단호하다 : 왜냐하면 첫 순간에는 인상이 아직 얕으며 그 후에 비로소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예상되고 기대된 사물이나 인물들은 이러한 본성을 지닌 사람들을 가장 많이 흥분시키며, 마침내 기대된 것이 도착했을 때 정신의 냉정함을 거의 지킬 수 없게 만든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35)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떤 날은 갑작스러운 위기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지만, 또 어떤 날은 몇 주 뒤에 있을 평범한 약속이나 행사를 앞두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안절부절못한다. 왜 나는 큰일에는 태연하면서, 정작 아직 닥치지도 않은 사소한 일에는 이토록 흥분하고 불안해하는 걸까?

니체는 "인상들을 깊이 파 들어가는 데에 강한 사람", 즉 우리가 '깊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어떤 갑작스러운 일에도 비교적 침착하고 단호하다"고 말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첫 순간에는 인상이 아직 얕으며 그 후에 비로소 깊어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중요한 사업계획 마감을 하루 앞두고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팀원들은 모두 당황하며 패닉에 빠졌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머릿속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나와 그 사건 사이에 투명한 막이 하나 생긴 것처럼, 나는 감정의 동요 없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처리했다. 그 순간 나는 위기 상황에 강한,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모든 사태가 수습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나는 갑자기 손발이 떨리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나는 그 일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니체의 말처럼, 그 '인상'은 나에게 즉각적으로 스며들지 않고, 하룻밤이라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리고 깊게 파고들었다.

이토록 침착했던 사람이 "오랫동안 예상되고 기대된 사물이나 인물들" 앞에서는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도 있다. 그들은 그 일을 "가장 많이 흥분"하며, "마침내 기대된 것이 도착했을 때 정신의 냉정함을 거의 지킬 수 없게 만든다."

중요한 여행이나 발표를 몇 주 앞두고 있을 때의 나는, 위기 속의 그 침착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나는 사소한 변수까지 모두 통제하려 들고, 혹시 잘못될까 봐 끊임없이 걱정하며, 그 '기대감'에 휩쓸려 일상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 기대와 흥분은 이미 내 안에서 너무 깊이 파고들어, 나를 완전히 지배해 버린다. 그래서 정작 그날이 닥쳤을 때는, 이미 모든 에너지를 그 '기대'에 소진해 버려 오히려 덤덤하거나 지쳐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결국 니체가 말하는 이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바로 '깊이 있는 사람'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깊이가 있다는 것은 모든 자극에 무뎌진 돌처럼 가라앉아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인상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남들보다 느리거나, 혹은 너무 빠르다는(즉, 예상을 통해 미리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상을 얕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든 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그만큼 빨리 잊어버린다. 하지만 인상을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갑작스러운 일은 천천히 소화하고(후폭풍), 예상되는 일은 미리 소화한다(흥분).

나는 더 이상 위기 앞에 침착한 나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혹은 작은 일에 불안해하는 나를 '유난스러운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인상을, 그리고 삶을 나만의 속도로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반응의 크기나 속도가 아니라, 그 인상을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고, 결국 그것을 나의 일부로 소화해내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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