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화음의 가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26. 선율 없이 – 끊임없이 자신을 고집하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조화있게 정돈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목표를 설정하는 모든 활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조직되어 있고 동적인 선율의 시작조차도 나타내는 일 없이 길게 늘인 조화로운 화음만으로 구성된 음악과 비슷하다. 외부에서의 운동도 단지 조화로운 아름다운 곡조의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에 금방 새로운 균형을 주는 것에 도움이 될 뿐이다. 현대의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본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발한 수 없기 때문에 극도로 불안해진다. 그러 나 그들의 모습은 하나하나의 분위기 속에서는 무엇을 위하여 선율이 있는 것인가라는 특별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삶이 깊은 호수에 고요하게 비치고 있을 때. 왜 그 삶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가? 중세에는 우리 시대보다도 그런 본성을 지닌 사람이 더 많았다. 군중 속에서도 자신과 더불어 아주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으며 괴테처럼 자신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을 아직도 만나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드문 일일 것이다 : "가장 훌륭한 것은 깊은 고요이다. 그 속에서 나는 세상에 역행하며 살아가고 성장하며 세상이 나에게서 불과 칼로도 알아갈 수 없는 것을 얻게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37)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간다. '생산적인' 삶,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그저 조용히 머무는 것은 왠지 모를 불안감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멈춰버린 시계처럼,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은 두려움이다.

이런 나의 조급함에, 니체는 '선율 없는 사람들'이라는 흥미로운 화두를 던진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집하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조화있게 정돈하는 특성"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조직되어 있고 동적인 선율의 시작조차도 나타내는 일 없이 길게 늘인 조화로운 화음만으로 구성된 음악"과 비슷하다. 나는 이 비유 앞에서 잠시 멈칫한다. '선율'(목표, 행동, 성취) 없이 그저 '화음'(존재, 조화, 고요)만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니.

니체는 "현대의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본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극도로 불안해진다"고 지적한다. 나는 이 '극도의 불안'이 바로 나의 불안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이 되기 위해' 달려간다. 더 나은 직장, 더 넓은 집, 더 많은 성과라는 '선율'을 만들어내야만 나의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저 고요히 존재하는 '화음' 같은 사람을 보면, 그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는 '꼭 무언가가 되어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믿음 체계를 흔들기 때문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삶이 깊은 호수에 고요하게 비치고 있을 때, 왜 그 삶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나의 조급했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왜 우리는 쉼 없는 '선율'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걸까? 어쩌면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외부의 움직임이 멈춘 그 '깊은 호수' 같은 고요함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외부의 자극이나 성과라는 배가 호수 위를 지나가더라도, 그들은 "금방 새로운 균형"을 되찾을 뿐이다. 그들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 '선율 없는 삶'이 결코 무기력하거나 텅 빈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니체는 중세에는 이런 본성을 지닌 사람이 더 많았다고 아쉬워하며, 괴테의 말을 인용한다. "가장 훌륭한 것은 깊은 고요이다. 그 속에서 나는 세상에 역행하며 살아가고 성장하며 세상이 나에게서 불과 칼로도 알아갈 수 없는 것을 얻게 된다."

진정한 힘은 세상을 향해 시끄러운 '선율'을 연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자신의 '조화로운 화음'을 지키는 '깊은 고요'에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는 것'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삶.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불과 칼로도 빼앗아갈 수 없는,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니체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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