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270. 읽는 기술-강력한 방향은 모두 일방적인 것이다. 그것은 직선의 방향에 가깝고 직선처럼 배타적이다. 즉 그것은 약한 당과 약한 본성을 지닌 사람들이 파도에 밀려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다른 많은 방향들과 부딪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문헌학자들이 일방적이라는 점 역시 눈감아주어야만 한다.
수백 년 동안 하나의 동업 조합 속에서 계속되어 온 원문의 복구와 그대로의 보존 그리고 원문의 해석은
마침내 올바른 방법을 찾도록 해주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책세상, 2019. p.267)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고,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갈팡질팡할 때가 많다. 때로는 약한 본성을 지닌 사람들이 파도에 밀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여러 방향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득,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길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강인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흔들림 없는 직선처럼,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는 듯하다. 니체는 강력한 방향성은 모두 일방적이며, 직선처럼 오직 하나의 길을 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대표적인 예로 '문헌학자'들을 제시하며, 그들의 일방적인 성향을 '눈감아주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문헌학자라는 단어는 내게 왠지 모를 고지식함과 끈기를 떠올리게 한다. 수백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그들은 오직 원문의 정확한 복구와 해석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묵묵히 매진해왔다. 수많은 필사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사라진 고어를 되살려내며, 시대적 맥락 속에서 텍스트의 의미를 되짚어내는 그들의 작업은 때로는 답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상상해본다. 수없이 많은 책들을 뒤적이며, 닳고 해진 종이 위에서 희미한 글자들을 해독하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을. 그들은 주변의 다양한 학문적 흐름이나 시대적 유행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오직 원문이라는 하나의 대상에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집중한다. 이러한 외골수적인 헌신이야말로,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오류를 극복하고 마침내 '올바른 방법'에 도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읽는 기술'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단순히 글자를 해독하는 것을 넘어, 한 가지 대상에 대한 깊고 일방적인 몰입을 통해 그 본질에 다가서는 능력. 그것은 마치 숙련된 장인이 오직 하나의 작품에 혼신을 다해 매달리듯, 원문이라는 대상에 모든 지적 역량을 집중하여 마침내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는 경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이러한 헌신은 단순히 과거의 텍스트를 되살리는 것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의 보고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귀중한 토대가 되었다. 그들의 외골수적인 태도를 우리가 '눈감아주어야만 한다'는 것은, 그 비타협적이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모습 이면에 숨겨진, 진리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끊임없는 탐구 정신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 속에서 흔들리기 쉽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이리저리 휩쓸리곤 한다. 하지만 문헌학자들이 한 우물을 파듯, 우리 또한 때로는 하나의 강력한 방향성을 가지고 묵묵히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나의 본질에 대한 불만을 던져버리고, 나의 자아를 용서하는 용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황야를 거닐며 인류의 발자취를 배우고, 미래의 매듭을 미리 탐색하는 성실한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강력한 방향은 모두 일방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직선처럼 배타적이다. 이는 우리가 삶이라는 책을 읽을 때, 때로는 모든 페이지를 다 읽으려 하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 필연적인 단어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읽는 기술'이다.
니체는 문헌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