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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풍경과 변하는 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277. 행복과 문화 - 우리의 어린 시절의 환경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정원이 있는 집, 묘지가 있는 교회, 작은 연못과 숲, 이런 것을 우리는 언제나 고뇌하는 자가 되어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우리 자신에 대한 동정심이 우리를 엄습한다. 우리는 그 후 얼마나 많은 고뇌를 겪어왔는가! 그런데 그것은 여기에 아직도 이렇게 조용하게, 영원히 남아 있다. 오직 우리들만이 이렇게 변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떡갈나무에서처럼, 시간이 더 이상 자신의 이로 마모시키지 못한 몇몇 사람들도 다시 만나게 된다 : 농부, 어부, 나무꾼들, 그들은 그때와 똑같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19. p.273)


나는 가끔 어린 시절의 풍경을 떠올릴 때가 있다. 마당이 있는 넓은 집, 가까운 곳에 있던 성당, 모래바위만 있었던 작은 산. 그 풍경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고요히, 영원히 남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곳을 다시 바라보는 나는 더 이상 그 어린아이가 아니다. 수많은 고뇌와 아픔을 겪어 온,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는 내가 서 있다. 오직 나만이 이렇게 변해왔구나, 하는 생각에 알 수 없는 동정심이 나를 엄습한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때때로 현재의 나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고,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제약한다. 특히 부정적인 경험이나 고통스러운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의 나를 따라다니며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나 역시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때로는 즐거웠던 추억이 현재의 나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한 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현재의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과거를 되새기고, 현재를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며, 미래를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예측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습관은 때로는 지혜로운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로막고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교회처럼, 과거의 익숙한 풍경이 주는 안정감에 갇혀 새로운 길을 탐색할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부정하거나 완전히 잊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희생해서도 안 된다.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되, 그 경험을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변치 않는 본질 속에서 변화하는 자신을 긍정하는 것. 고뇌하는 자가 되어 과거를 돌아보되, 그 고뇌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을 살아가는 끊임없는 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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