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282.
비탄의 노래-우리 시대가 명상적 삶의 퇴보와 때로는 멸시를 반드시 수반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 우리 시대의 장점들일 것이다.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위대한 도덕주의자가 부족하고, 파스칼Pascal, 에픽테토스Epiktétos, 세네카Seneca, 플루타르코스Plutarchos가 조금도 읽히지 않으며, 일과 근면함-건강이라는 위대한 여신에 수반되는 이 질병처럼 종종 맹렬히 날뛰는 듯이 보인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사색하기 위한 시간과 사색할 때의 평온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견해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숙고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책세상,2019. p.276)
지금의 사회는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움직이며, 기술의 발전은 시공간의 제약을 허물고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러한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마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처럼 느껴진다. 쉼 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성과를 내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 이 시대의 장점이라고 불릴 만한 이 빠른 속도가, 동시에 우리에게서 '명상적인 삶'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나는 마주한다.
니체는 '일과 근면함'을 '건강이라는 위대한 여신에 수반되는 질병처럼 종종 맹렬히 날뛰는 듯 보인다'고 표현한다. 나는 이 말에서 현대인이 겪는 고통을 읽어낸다. 우리는 마치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끊임없는 경쟁과 효율성 강조는 우리를 쉼 없이 일하도록 내몰고, 잠시라도 멈춰 서서 사색하는 시간을 죄악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회 시스템은 개인에게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잃고 획일적인 속도에 맞춰 움직이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과도한 활동은 육체적인 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소진을 야기하고,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내면의 평온함마저 빼앗아간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성찰할 시간과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마치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처럼, 우리는 맹렬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지만, 주변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현자들은 고독한 시간 속에서 자신을 탐구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파스칼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불멸의 고전을 남겼고, 에픽테토스와 세네카는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화를 얻는 지혜를 전파했으며, 플루타르코스는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도덕적 교훈을 제시했다. 그들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당장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낡은 이야기라는 편견으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사색하기 위한 시간과 사색할 때의 평온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견해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숙고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피상적인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접하면, 즉각적으로 반박하거나 무시하기 일쑤다. 깊이 있는 토론과 건설적인 비판은 사라지고, 감정적인 대립과 자기주장만이 난무하는 광경은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결국, 우리는 맹렬히 날뛰는 근면함이라는 질병 속에서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깊이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니체가 말한 '비탄의 노래'는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중요한 가치들에 대한 경고이자, 멈춰 서서 다시 사색할 용기를 가지라는 촉구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활동과 생산의 굴레에서 벗어나,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자신을 응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지혜는 바깥세상과의 끊임없는 접촉 속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고요한 침묵 속에서 비로소 샘솟는 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사색할 시간과 평온함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당장의 성과에 눈이 멀어 내 안의 깊은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