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428. 너무 가깝게-우리가 사람들과 너무 가깝게 살게 되면, 마치 우리가 훌륭한 동판화를 맨손가락으로 자꾸 만지게 되는 경우처럼 된다 : 어느 날 우리 손 안에는 보잘것없고 때 묻은 종이밖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영혼도 끊임없는 접촉을 통해서 결국 닳아버릴 수 있다...... 사람들은 여성과 친구들과 너무 친밀하게 교제함으로써 항상 그 무엇을 잃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삶의 진주들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19. p.343)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친구와는 늘 가까이 있고 싶어 한다. 마음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니체는 우리가 사람들과 너무 가깝게 살게 되면, 마치 훌륭한 동판화를 맨손가락으로 자꾸 만지게 되는 경우처럼 된다고 경고한다. 처음에는 아름답고 섬세했던 동판화가 끊임없이 만져지면서 결국 보잘것없고 때 묻은 종이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끊임없는 접촉을 통해서 결국 닳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 나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상처받고 지쳐버린 경험이 있다. 상대방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나의 모습을 꾸미고,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마치 물감이 섞여 본연의 색깔을 잃어버린 듯, 나의 개성과 가치관이 흐릿해졌다. 나는 상대방의 그림자에 가려져 나 자신의 빛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나 자신은 흐려지고, 상대방의 일부가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긍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는 오히려 개인의 독자성을 훼손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마치 숨 막히는 공간에 갇힌 듯, 자유롭게 숨 쉬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관계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나의 영혼이 닳아버리는 경험은 결국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니체의 아포리즘은 우리에게 관계 속에서 '거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사랑하는 관계든, 친구 관계든, 혹은 부모와 자식 관계든, 서로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건강하고 오래 지속시키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서로의 숨결마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한 발짝 떨어져서 상대방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온전히 볼 수 있다.
마치 아름다운 동판화를 감상할 때, 너무 가까이서 보면 섬세한 선들이 흐릿해지고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작품의 깊이와 예술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인간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로에게 충분한 공간을 허락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때로는 침묵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 진정한 친밀함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