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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0. 2020

슬픔을 피하는 방법

2장 : 어둠 속을 마구 나다니다 _ 1화

꿈속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다나의 얼굴이나의 팔과 다리가 없다난 존재하는데 보이지가 않는다어느 봄날 꿈속에서 나는 허상이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어쩔 수 없이 숙면에 빠트릴 요량으로, 그 힘들다는 ‘아쉬탕가’ 요가 학원을 등록했다. 요가를 마치고 30분을 걸어 집에 돌아오면 온몸의 관절들이 악을 쓴다. 당연히 잠이 잘 올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틀을 못 잤다. 근육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잠도 못 자면…, 미치기에 딱 알맞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명상 학원에 갔다. 정신과보다는 명상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푸근한 외모의 상담사가 나를 맞아 주었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먼저 체크를 해주는 분이다. 어떤 이야기든 다 들어줄 분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울먹이며 지금 나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불면에는 명상이 꼭 필요하다며, 나에게 적극 등록을 권유하신다. 비싼 비용이었지만, 나의 슬픔을 덜어 낼 수만 있다면 무슨 방법이든 마다하겠는가? 바로 ‘명상 학원’을 등록했다. 

불이 꺼진 어두침침한 방에 들어간다.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벽에 붙여진 조그만 점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한다. 명상의 기본적인 체계는 이러하다. 마치 무서운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 그 영화가 무섭지 않게 되듯이, 내 안의 영화를 계속 상영하고 그 영화를 끊임없이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보다 보면 마음에 갇혀있던 감정이나, 잊고 싶었던 일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오고, 그것이 객관화가 되어서 아무런 감정 없이 그것들을 마주 할 수 있다는 원리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추출하여 블랙홀에 버리는 것이다. 처음 시작이 어렵다. 눈물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다가 잠들기를 바라며, 집 천장에도 검은 점을 붙였다. 하지만 점은 점점 커지기만 할 뿐, 나를 잠들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눈물도 나오지 않기 시작할 때쯤이면 분노가 일어난다. 죽음에 대한 분노, 나의 무능력에 대한 분노, 삶의 모든 부당함에 대한 분노. 그 분노 단계를 넘지 못하고 명상을 그만두었다. 분노가 나를 잡아먹어버렸다. 나는 분노 덩어리가 되었다. 


결국엔 정신과의 문을 두드린다.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의 여의사 선생님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나는 지금 분노와 억울함에 휩싸여 있어서 너무 고통스러운데, 그것을 피할 방법을 모르겠다. 절벽 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인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아. 그러시군요.”

어떠한 이야기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 선생님이 또 야속하다. 나에게 정신 분석 검사를 진행해 보자고 하신다. 대략 300문항의 시험지와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바로바로 써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했다. 심전도 검사도 했다. 뇌파 검사도 했다. 일주일 후 검사 결과지에는 ‘꾀병이 의심됨’이라고 찍혀있다.


내가 꾀병! 꾀병이라니!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병이 아니라고? 그러면 이것은 단지 슬픔인가? 그렇다면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알려 달라! 그냥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니. 이 고통을 왜 내가 이겨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신경 안정제와 진정제 그리고 수면제가 나의 슬픔에 대한 처방이었다. 

방법은 없다. 약만 있다.

약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그 무엇도 하기 싫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세상엔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온전히 그것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 사라지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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