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깊은 바다의 물고기는 물이 뭔지 모른다_ 3화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언제나 엄청난 ‘자린고비’였다. 단 한 번도 시원하게 펑펑 돈을 써 본일이 없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막 지르는 것은 오직 자식들의 교육비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엄마는 나의 낭비벽을 항상 나무랐다.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저축 통장 하나 없이 월급을 매달 몽땅 다 써대는 것을 언제나 못마땅해했다. 월급은 원래 잠시 통장에 묻었다가 가는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나에게, 빚은 안 지고 살고 있는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확인을 받았다.
“그렇게 막 쓰고 살다가 나이 들면 ‘골드 미스’는 언감생심, 돈 없으면 넌 그냥 노처녀야!.”
그렇게 항상 절약을 외치던 엄마가 난소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의 고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느 날 명품 가방을 갖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명품 가방이라…. 불안이 고개를 쳐드는 깊은 생각은 하기 싫었다. 가방 하나 따위 뭐가 대수냐! 백화점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C사, L사, B사를 차례로 돌면서 가방을 골랐다. 엄마는 L사의 가장 최신 상품을 골랐고, 나는 우아하게 3개월 카드 할부를 질렀다. 발랄하기 그지없는 그 가방은 엄마의 마음까지 밝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이후부터 서울에 항암 치료를 받으러 오는 때마다 엄마는 무언가를 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물건에 돈을 낭비해 본 적 없는 엄마가 드디어 무의미한 소비생활이 주는 소소한 기쁨을 이해한 듯하다. 항암치료로 빠져버린 머리카락처럼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는 공허를 잠깐이라도 물건으로 대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두어 달 후, 엄마와 함께 또 백화점에 갔다. 여성의류매장을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한 매장으로 들어간다. 난 엄마의 취향은 도저히 모르겠다.
“이거 어때? 저건 어때?”
“음.. 별로야. 이상해.”
나의 심드렁한 표정에 매장을 지키던 직원이 쪼르르 달려온다.
“따님이 엄마 취향을 잘 모르시네….”
직원은 엄마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한다. 항암 치료 때문에 창백한 엄마에게…,
“사모님 얼굴색이 밝아서 이 컬러가 잘 어울려요. 사모님! 이 디자인은 어떠세요? 이번에 최신 유행 디자인인데? 한번 입어보세요.”
엄마는 이 옷, 저 옷, 추천받은 옷들을 몽땅 다 입어본다. 엄마는 옷을 입고 나올 때마다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며 매장 직원에게 어떤지 물어본다. 옷 입어보느라 서로 지칠 만도 하건만, 세일즈 정신이 투철한 여직원은 엄마에게 하나라도 팔겠다며, ‘조금만 있으면 넘어온다’라는 신념으로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게 보였다. 진심 없는 칭찬들을 남발한다. 뭐가 그렇게 잘 어울린다는 건지….
“글쎄, 정말 그게 맘에 들어…?”
“아니 맘에 안 들어. 가자. 잘 봤어요.”
어.. 엄마? 입어본 옷을 산처럼 쌓아두고, 홱 돌아서 나오는 우리의 뒷모습을 망연자실 쳐다보던 잔뜩 약이 오른 그 매장 직원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호들갑스러운 싸구려 말투로 질 떨어지는 옷을 엄마에게 팔아보려 알랑거리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내가 저런 옷을 살 줄 알고? 내 귀가 얇아 보이니?”
엄마는 얄궂은 미소를 짓는다. 엄마는 백화점에서 매장 직원에게 손님 대접도 받고, 아부도 듣고, 좋은 것을 입어보고, 기분 좋게 돈도 쓰고,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그런 살아있음을 느끼러 백화점에 간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진심 없는 말만 내뱉는 매장 직원은 괘씸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가방 수발을 하며, 엄마가 부리는 그 낯선 통쾌함에 놀랐다. 엄마도 저렇게 살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지금까지 몰랐네.
아, 맞다! 처녀 시절 ‘복순’씨라 불렸던 엄마는 엄청난 멋쟁이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맞이하는 첫 방학 무렵이었다. 엄마는 서랍장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라벤더색 미니 원피스를 하나 꺼내 들었다. 본인이 젊은 시절에 얼마나 날씬하고 유행에 민감한 멋쟁이 아가씨였는지를 나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수진아! 이거 봐! 이거 엄마가 네 나이 때 입었던 거야! 어때 아직도 예쁘지?”
“에이 거짓말! 엄마가 이걸 입었다고? 허리가 이렇게 작은데?”
질 좋은 옷감으로 잘 재단된 민소매 원피스는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고서야 입을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그 원피스를 만든 양품점은 아빠의 누나, 즉 고모가 근무하는 양품점이었고, 고모는 엄마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더랬다. 그래서 아빠와의 맞선을 주선했고, 달랑 세 번 만나고 아빠와 결혼한 21살의 복순 씨는 우리들의 엄마가 되면서, 그 라벤더색 민소매 원피스를 다시는 입지 못했다.
모든 엄마들은 엄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아내이며,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주기 전에, 엄마는 여자였다. 사치를 부릴 줄 몰라 안 부린 것도 아니요. 멋을 낼 줄을 몰라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식 걱정, 남편 걱정에 죽을 때까지 자신은 마음대로 쓰지도 못할 돈을 그렇게 모으기만 하셨던 거다. 엄마들은 그렇게 산다. 그리고 죽는다.
대부분의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한다. 딸들이 지켜본 엄마의 삶은 희생의 대명사로 보이는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나는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
“내 엄마여서, 우리들의 엄마여서, 엄마는 어땠어? 그래도 조금은 행복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