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깊은 바다의 물고기는 물이 뭔지 모른다 _ 4화
또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팔순 가까운 연세의 아버지가 말이다. 십 수년 전 큰 사고로 인해 여러조각으로 부러져 철심을 박은 왼쪽 다리는 아빠를 절뚝거리게 만든 지 이미 오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 없다는 듯 언제나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아빠였다. 마치 도는 것을 멈추면 안되는 팽이처럼. 저번엔 후진하는 버스에 부딪혀 왼쪽 발목을 접 질렀다고 했다. 이번엔 횡단보도에서 우회하던 차가 아빠의 오른쪽 무릎을 박살냈다. 물론 이 사고들은 운전자들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다.
“아빠! 또 다쳤다며!? 왜 자꾸 다치는 거야! 속상하게. 아빠! 뭐가 잘 안보여? 잠깐씩 정신이 없어? 이게 벌써 몇 번째야? 그러다간 남아나는 곳이 없겠어.””
“크게 다친 것 아니다. 걱정 마라”
언제나 그렇듯.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에게 걱정을 보태는게 싫다는 아빠 식의 대답이다. 아빠가 원해서 다치는 것도 아니 것만, 탓 할 곳이 없는 나는 아빠의 부주의함을 원망 하게 된다. 정말 몹쓸 딸이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왜 자꾸 사고가 아빠를 덮치는지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나도 같은 것을 겪고 있으므로 그냥 안다.
“2017년 1월 5일 오후3시 40분. 김길례씨 운명하셨습니다.” 의사의 공식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치열했던 암과의 사투에서 엄마가 항복하고 말았다. 오열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예쁜 옷을 입은 엄마의 시신은 장례식이 치뤄질 장소로 옮겨졌다. 곧바로 언니와 나는 엄마가 세례 받은 성당으로 향했다. 상복을 입기 전에 묫자리 값을 치르고, 삼일 후 치뤄질 장례 미사에 대한 예약을 하러 가야 하는 것이었다. 겨울비가 내리는 늦은 밤에 도착한 성당은 희미한 가로등이나마 몇개 없어 무척이나 어두웠다. 내 눈엔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멍한 상태로 후진을 하다가 주차되어 있던 차에 살짝 부딪혔다. 다친 사람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차의 범퍼는 너무 낡아서 무엇이 새로 생긴 흉터인지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정말 그 날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요행은 없었다. 그 어두운데에서 꼭 누군가는 보고 있다. 장례가 끝나고 그 낡은 차의 범퍼 값을 통째로 물어줘야 했다.
같은 해, 추석이었다. 제주 한림에 위치한 성당 공원 묘지에서 엄마께 제를 올린 후 제주시로 돌아오는 차의 운전대를 내가 맡았다. 내 차엔 아빠와 언니와 조카가 타고 있었다. 우리 일행 차량 세대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일렬로 제주시를 향했다.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신호가 없는 조그만 사거리가 나타났다. 사거리를 통과하는 찰나, 내 시선 왼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하얀 것이 차의 운전석을 엄청난 속도로 들이 받았다. 굉음과 함께 차가 미끄러지며 기울어졌다. 뒤집히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인도에 부딪히며 차가 멈췄다. 귀가 물속에 처박힌 듯 멍했다. 충격으로 얼어 붙었던 나는 조카의 울음이 터지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 왔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운전석에서 내려보니, 심하게 구겨져 멀리 튕겨 나간 흰색 조그만 승합차에서 운전자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벌건 사고 차량의 운전자는 음주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크게 다친 사람도 없어 보였고, 명절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아래 경찰 없이 보험 처리만 했다. 혹시 몰라 모두들 병원을 갔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뭘 잘했다고 병원에 가겠는가? 사거리에서 나는 분명히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그 차를 보지 못했다. 그런 것도 못보는 얼빠진 상태에서 가족을 태운 차를 운전을 하다니. 사거리 부주의에 대한 나의 과실은 10%였지만, 사실 나의 마음의 과실은 100%로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갑자기 분출하여 잠시 나를 사로잡았다가 놓아주는 어떤 것이 있다. 아무 때나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대는 철 없는 난을 보면 그러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모르는 아주머니의 도톰한 손마디를 봤을 때도 그러하다. 탤런트 ‘김혜숙’씨가 나오는 영화를 봐도 그러하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매우 심해지기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힘껏 쥐었다가 놓아준다. 그것이 슬픔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그리움, 애틋함, 기억, 향수, 엄마, 엄마다! 엄마의 빈자리다. 공기가 빈 곳에 돌풍이 일고, 물이 빈 곳에 소용돌이가 생기듯. 그것은 압도적인 중력으로 정신을 순간 흐릿하게 하고, 하염없이 펄럭이며 날아가는 비닐봉지처럼 넋을 놓아버리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렇게 된다. 그러니 누구를 탓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모든 사고의 이유인 것을…. 아빠도 지금 그러한 것이다. 사 십년을 함께한 엄마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그저 매번 숨을 내쉴 때마다 그 빈자리가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래 볼 뿐이다. 나도 아빠도, 가족 모두가 항상 ‘별일 없으니, 걱정 마라’고 말하지만, 어찌 별일이 없을 수가 있으랴.
나는 얼마전 삶의 터전을 옮겼다. 서울에서의 27년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도로, 집으로 돌아왔다. 멀리서 전화로만 걱정하며 ‘별일 없다’는 말을 의심스러워 하던 생활은 미련없이 버렸다. 이젠 아빠와 한 지붕 아래서 산다. 별에 별일은 언제나 생기지만 이젠 그 별일이 별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일상의 사건 일 뿐이다. 좁은 공간에서 기계를 만지는 일이 잦은 아빠는 오늘도 정강이에 생채기를 얻어 온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도 이미 아픈 다리는 감각이 예민하지 못하다. 다친 줄도 모른다. 저녁이 되어 피딱지가 될 때까지.
‘에이. 아빠 또 다쳐서 왔네….’
속상한 마음은 속으로만 말한다. 나는 상처부위를 소독하고 살이 잘 오른다는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단단히 붙인다. 부주의에 대한 잔소리는 이제 서로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아니, 그 반창고 말고, 저기 저거, 아니, 연고가 너무 많아!”
오히려 아빠는 나의 서투른 치료 솜씨에 잔소리를 한다. 이제 아빠의 잔소리는 투정으로 들린다. 아내가 아닌 그 투정을 들어줄 이가 이제 딸들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럴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 쫌! 가만있어 봐요! 거참!” 그 말에는 묘한 안도와 믿음이 있었다. 나도 어설프게 따라 해보지만 아빠에게는 도통 먹히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엄마의 빈자리를 새로 채워가고 있다. 상처 난 구멍에 연고를 채우듯이. 엄마가 떠난 슬픔이 치유될 수는 없겠지만, 슬픔을 함께하는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 그것은 의외로 치유의 힘이 크다.
창작수필 2021 가을호 / 창작수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