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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1. 2020

조르바를 닮았다

3장 : 깊은 바다의 물고기는 물이 뭔지 모른다 _ 2화

누군가에게 책 선물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더군다나 평소에 보는 책이 보그’, ‘바자’ 등의 패션 매거진이 대부분이었던 사람에게읽는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매우 고민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림이나 사진이 없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역이라고 생각했으며만일 읽는다 손 치더라도 마지막 장까지 읽는 일이 거의 없었다나의 방치된 문학적 취향은책 선택작가 선택 또는 장르 선택조차 정해진 것이 없는 백지장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그런 나에게

이 책 주인공이 팀장님과 닮았어요.” 이 말과 함께 수줍게 책을 내미는 J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이윤기 번역그 책의 제목이었다.

J는 퇴사를 하면서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들에게 책을 선물했다. 시집소설인문 교양서 등등다양한 종류의 책을 각자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선정하여 선물했다선정 기준은 J만이 알 수 있었겠으나그중 내 것이 가장 두꺼웠다작가도제목도 낯설다오스틴 자매들 정도(?)만 이해하는 정서의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거친 언어를 구사하는 상 남자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그 역한 수컷 냄새에 100페이지 정도에서 읽기를 멈춰 버렸다그땐 그랬다어릴 적 토요 명화에서 앤서니 퀸’ 주연의 조르바를 봐서 싫은 것 일 수도 있다아시는지 모르겠으나…, 한국말을 잘하는 앤서니 퀸의 그 느끼함은 웬만한 치즈 한 덩이를 능가한다.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으며이제 와서 의문이 생긴다

조르바와 나무엇이 닮았다는 거지

조르바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만 움직이는좋게 말하면 진정한 자유인이며나쁘게 말하면 막무가내 제멋대로인 사내다본능에 충실하고 거칠고 투박하지만사물을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는 솔직함과 순수함을 지녔으며불필요한 인식에 사로잡힌 세상을 향해 사이다 같은 발언을 날린다대꾸할 수 없는 그의 말들은 때론 깨달음을 주기도 하는 것이… 마치 해탈한 듯 보이기도 하다이것이 내가 본 조르바의 모습이다.

나의 어떤 점이 그와 닮았다는 것인가자유인제멋대로본능적인솔직함그런 것들이 닮았다면나는 매우 멋진 사내가 아닌가웃음이 나온다신기하게도 조르바를 닮았다는 말은… 웃으면서 뺨을 맞는 그런 기분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에게 그 책을 선물한 J는 참으로 용감하다. J도 조르바를 닮았구나.

 

오랜만에 만난 친동생에게, 나도 모르게 틀에 박힌 잔소리를 하고 있다듣는 동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해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앉아엄마의 기색을 살피던 7살짜리 조카가 내게 한마디 던진다.

이모는 속 답답한 소리만 하고 있어!”

“… 그런 말을…, 어디서 배웠니…?”

너 또한 조르바를 닮았구나어쩌면 조르바를 닮았다는 것은 넌 굉장히 놀라운 사람이야!’ 또는 넌 정말 미치도록 귀엽구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J 의도가 어떠했든 이제 나는 조르바를 닮았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였다고 해석한다그리고 그것이 마음에 든다이제야 조르바의 자유를 흉내라도 내며 살아보고 싶어 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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