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어둠 속을 마구 나다니다 _ 7화
울면서 타호(tahoe)로 떠난 M에게 듣는 그곳은 상황은 끔찍할 뿐이었다. 그의 친구 부부는 완전히 공황 상태가 되어, 죽은 아이의 아빠인 자신의 친구는 아이를 구하지 못한 괴로움에 자살까지 시도하려 했고, 경찰은 살인이 아닌가를 따지려 수사를 한다고 했다. 엄마였던 친구는 다른 아이가 있어서 강하게 버티고 있지만, 그들의 부모들이 도착할 때까지 더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했다. M은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며칠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난 혼자서도 잘 있으니, 나는 걱정하지 말고 친구를 위로해 주라며 오히려 그를 독려했다. 단지 조금 외로우니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는 말은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온 지 이제 2주째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그즈음 두 번째 호텔을 나와 미리 예약해 두었던 ‘에어비엔비’ 숙소로 옮겼다. 그 집은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 있는 고풍스러운 아파트였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오래된 나무 바닥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으며,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주방, 두 개의 세면대가 나란히 있는 그림처럼 예쁜 욕실, 밝고 하얀 나의 방, 그 방의 창문을 통해 도시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래 여기가 샌프란시스코지! 이제야 자리를 찾은 듯한 안도감마저 들었다.
2018년 6월 12일. 김정은과 트럼프가 손을 맞잡은 역사적인 만남이 오늘 이루어졌다. 북미 간의 긴장 완화는 축제처럼 온 도시를 들썩이게 했다. 마치 전쟁이 끝난 것처럼…. 세상은 평화로웠지만, 며칠 전부터 M과의 연락이 아예 끊겨버린 나는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마지막 연락이 일주일 전이었다. 메신저를 열어보지도 않는다. M이 갑자기 변했다. 왜 그러는 걸까? 이유가 궁금하다. 미치도록…, 왜? 왜? 왜? 걱정은 집착이 되고 긴장된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된다.
집중된 신경을 분산시키기엔 관광이 최고다. 하지만 나는 관광을 싫어한다. 관광의 흥미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투어버스를 타고 먼저 눈요기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투어 버스를 탔다. 지붕이 없는 2층에 자리 잡은 나는 살을 에는 바람에 거의 얼어 죽을 뻔했다. 그렇게 관광 계획은 접었다.
추위와 외로움에 예민해진 나의 위장이 드디어 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뭐라도 먹기만 했다 하면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도 뛰어가야 했다. 그러다가 공기만 마셔도 설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꼴이었다. 하지만 하늘 아래 원래 안정적인 것은 없다. 항상 비상사태를 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설사에 대비하다 보니, 하루 종일 박물관에만 있게 됐다. 샌프란시스코의 거의 모든 박물관들을 다 돌았다. 시청에 있는 박물관까지도 갔으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은 결혼식 최고 맛 집이기도 하다. 남의 결혼식 구경은 덤이다. 시간도 넉넉하여 천천히 하루에 한 곳만 둘러봐도 충분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은 3번 이상 갔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기다리는 연락은 곧 올 것이라 믿었다.
매일 아점을 먹으러 가는 유니온스퀘어 근처에 단골 식당도 생겼다. 언제나 자리가 여유로운 편이었지만, 주말이면 1인 석은 항상 만원이었다.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있었다. 나처럼 자리를 기다리던 혼자 온 백인 여성이 나에게 동석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다. 거의 2주일 넘게 홀로 지냈던 나의 입술이 벌써 말을 하고 싶어 들썩이고 있었다. 이젠 영어 울렁증도 없다. 나에게 동석하자고 말해 준 이 여인이 너무 고마웠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대각선으로 마주 앉았다. 나는 늘 시키던 베이컨과 스크램블 에그를 시켰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그녀는 이곳으로 아들을 만날 겸 주말여행을 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의 추위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 말에 격한 동의를 하면서 말문이 트였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나에게 왜 이곳에 왔냐는 질문에 “음.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나의 사연은 장황하게 늘어졌다.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발리에서 만난 친구 M을 만나러 이곳에 한 달 일정으로 왔다. 하지만 만나지 하루 만에 그와 헤어졌다. 왜냐하면 그의 대손이 풀장에 빠져서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타호로 갔다. 그런데 일주일 후부터 아예 연락이 없다. 그는 왜 그러는 걸까요?”
참을성 있게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L.A 오신 아주머니는 입으로 들어가던 포크를 내려놓고 나를 한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당황스럽다. 아 공항의 그 세관원이 또 생각난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한다.
“그 아이가 죽었을 수도 있겠지만, 믿기지는 않는군요.”
아주 별안간, 마치 처음으로 안 것처럼..., M의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처음 보는 아줌마도 금방 알아채는 것을 나는 왜 언제나 모르는가?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그의 연극에 속아서, 연락이 올 거라 믿고 끝까지 기다려 보려고 했단 말인가? 이런 개새…, 그의 연기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감이었다! 모든 곳이 급경사인 이 도시처럼 나의 감정도 급하게 오르고 또 내린다. 자학의 시간이 계속된다. 나의 불행은 과연 내가 만드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원해서 여기에 왔는가?
“그것이 아마도 그 기간 동안에 그가 보인 여러 가지 어이없고 모순된 행동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는 패니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로 인해 더욱더 큰 절망감에 빠져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을 뿐이다.”
- 폴 오스터 <리바이 던> 중
동전 세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읽어 내려가던 소설에서 이 문구를 보자마자, 내 마음의 분노가 순식간에 가라 않았다. 나보다 M이 본인의 잔인한 이기심에 더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 느껴졌다. 이것은 절대 이해심이 아니다. 자기 위안도 아니다. 난 그냥 M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너 보다 더 심한 것도 많이 겪어 본 사람이라서, 너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고, 그리고 어린애처럼 거짓으로 울지 말라고, 보기 흉하다고....”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M이 겁 많은 거짓말쟁이였다고 믿는다. 믿음이란 원래 나 편하자고 생긴 거다. M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그 믿음으로 나는 다시 자유롭게 풀려난 느낌이었다. 적어도 5살 꼬마의 익사는 사실이 아닐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추위에 두꺼운 재킷까지 사 입은 나였다. 샌프란시스코보다 훨씬 더 북쪽에 있는 춥기로 소문난 그 타호에, 풀장도, 물도 있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눈먼 희망이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촌극.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나는 잠시 낯선 것에 홀려 탈출구를 찾고자 했던 거다. 내가 아직도 못 이룬 것이 있는데,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는 있을 거라는 착각.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이었는지 한심하기까지 하다. <욕이 절로 나오는 머저리 같은 한 달 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나는 가벼워져 있었다. 설사병으로 몸무게가, 여행 경비로 지갑이, 그리고 홀랑 빠져 버린 정신머리가….
처절하게 실패할 운명의 모험도 있다는 것을 이 여행을 통해 알게 됐다. 시작부터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게 어떤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