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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0. 2020

자빠져야 했던 날

2장 : 어둠 속을 마구 나다니다  _ 3화

죽을힘을 다해 오르막을 올랐다오르막의 끝에는 아찔하게 이어진 내리막길이 혀를 쭉 내밀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내달리고 있는 나는 브레이크를 잡기는커녕 페달을 더 밟았다내리막의 가속은 매우 빠르게 나에게 붙고 있었다.

 

시원한 청량감이 내 몸을 꿰뚫고 지나간다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더할 수 없이 짜릿하다순간 자전거 뒷바퀴가 왼쪽으로 돌기 시작한다속도가 너무 빨라 자전거는 조종불능 상태가 되었다. 지금 브레이크를 잡으면 공중으로 솟구쳐져 머리부터 바닥으로 내팽개쳐질 것이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이 순간에 그나마 안전하게 멈추는 방법은 내 몸을 에어백 삼아 자빠지는 것이 최선이었다. 목이 부러지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그것은 생각만 해도 흉측하다.

몸의 중심을 옮긴다무게중심을 바퀴가 기울어진 왼쪽으로 서서히 싣는다자전거가 옆으로 기울기 시작한다바닥에 부딪히는 찰나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한 1차 충돌로 헬멧이 깨진다. 2차 충돌은 바닥과의 마찰을 야기했다한참을 미끄러지다가 멈춘 나는 자전거와 함께 그렇게 뜨거운 한여름의 아스팔트 위에 한동안 누워있었다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오늘은 자빠져야만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미 신발과 페달의 클릿은 풀려 있었다망가진 나의 자전거를 끌고 절뚝거리며 도로 가장자리로 몸을 피했다도로 가장자리에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바닥에 앉아 어디가 얼마큼 아스팔트에 갈려 없어졌는지 확인한다끔찍한 쓰라림은 곧 온몸으로 퍼졌다왼쪽 어깨와 팔꿈치골반과 옆구리무릎과 정강이에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다행히 상체는 옷이 막아줘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옷이 너덜거릴 정도로 헤졌으니 맨 살로 그 고문을 당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하지만 골반과 옆구리는 옷으로도 보호가 되지 않을 만큼 충돌의 힘이 컸다온몸이 부러진 것 같은 아픔에 눈물이 흐른다눈물이 흐르는 김에 아예 목을 놓아 울어버린다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입가엔 웃음이 터져 나온다울면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너무 아프잖아.. 하하하!”

  

바로 내 앞에서 먼저 가던 일행이 내가 나타나지 않자그 오르막을 다시 올라와 나의 그 기이한 웃음에 머리가 다쳤는가를 의심하며나의 안위를 확인한다난 계속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하하이거 봐 피가 많이 나…. 어쩌지하하하!”


그 쓰라린 고통은 오히려 나에게 속 시원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언젠가 일어났을 것이 분명한 두려운 일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단지 그게 오늘이었던 것일 뿐이다. 뼈가 저릴 만큼 아팠지만내리막길을 내달릴 때보다 몇 배는 더한 쾌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그곳에서 멈췄고그날의 자전거 멤버들은 나를 구하러 와주었다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속도를 왜 그렇게 높였는지 나의 부주의를 나무란다그 이후 나는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그 속도는 나를 위험 속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히 매혹적이었다그 악마적인 고통 속에서 도피처를 찾으려는 나의 본능은 눈앞에 직면한 죽음의 두려움보다 더 나쁜 불안이 만드는 공포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온몸을 던져 멈추도록 해야 했다자포자기적 행동인 듯 보이지만 그 반대였다고 생각한다강렬한 삶의 본능. 하지만 거대한 공포를 다른 고통으로 덮어 감추려고 했다니그것은 어리석다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항암치료 차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만나러 갔다엄마가 내 꼴을 보더니 놀라서 묻는다.

여자애가 꼴이 그게 뭐냐뭐 하느라 온몸이 다 까져서 왔어?!” 

자전거 타다가 자빠졌어별로 안 아파하하!

아파 죽겠다는 말은잠시 고통의 유혹을 즐겼다는 말은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봐 불안해 미칠 것 같다는... 말은 차마 엄마에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실실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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