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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0. 2020

고통에 대한 감수성

2장 : 어둠 속을 마구 나다니다 _ 4화

엄마의 항암치료는 이제 방사선 치료로 바뀌었다바뀐 항암 약물에도 별 차도가 없었고몸은 곧 부서질 듯 약해져서 더 이상 동원할 방법이 없었다사실 방사선 치료도 병원에서는 부정적이었다마치 계속 입원을 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되는 것처럼 말하였으니….  

 

괴물 같은 암세포는 엄마의 이미 없어진 자궁에서 너무 많이 퍼져 나가 척추까지 잠식해버렸다. 척추에 생긴 암 덩어리를 표적 치료하기로 했다방사선실에서 이미 몇 시간 동안 방사선 수술이 이어지고 있었다비 절개 수술이지만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통증도 심할 것이므로 수면마취를 한다고 했다나는 일찍 퇴근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병실에서는 언니와 형부가 엄마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수술이 끝나려면 한 시간 더 걸린다고 했다나는 수술실로 갔다아직 수술이 끝나려면 멀었지만엄마의 수술 방 문 밖에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이름이 붙은 수술 진행 중 불이 켜져 있는 방 앞 소파에 앉았다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수술실에서 들렸다누군가의 괴성과 직원들이 내는 소음이 뒤섞여서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엄마의 이름이 불리며다급하게 보호자를 찾는다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빨리 수술실로 들어오라고 한다지금 여긴 나밖에 없는데...,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그 울부짖는 괴성은 엄마가 내는 소리였다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자기 몸에 손을 대는 간호사들을 다 밀쳐내고 있었다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간호사 4명이 엄마의 팔다리를 잡고 있었다마취가 아직 덜 깬 엄마는 침상에서 내려가겠다며 간호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엄마는 이곳이 어디인지왜 여기에 있는지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나 갈 거야저리 가! 왜 못 가게 하는 거야날 붙잡지 말라고으아아악아프다고너무 아파!”

저 눈빛은 나의 엄마가 아니었다고통은 엄마를 한 마리 야수로 만들어 날뛰게 만들었다악을 쓰며 욕을 내뱉으며 괴성을 지르는 엄마의 모습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목구멍까지 올라온 공포를 눌러 내렸다. 

엄마나야수진이엄마!” 

내가 아무리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진정시키려고 부른 보호자가 아무것도 못한 채 멍하니 서있기만 하니답답했던 간호사가 다른 보호자 없냐고 빨리 부르라고 한다환자가 진정이 돼야 진통제를 맞을 수 있고 그래야 병실로 옮겨 준다는 것이다간호사들이 몇 명 더 달라붙어서 끈기 있게 엄마를 진정시키려고 한다하지만 엄마는 계속 괴성을 지르며 울면서 화를 내고 있다나는 언니에게 전화해서 빨리 내려오라고 했다나는 무서움에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언니는 내가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 생겼냐고 놀라 물었다

언니엄마가엄마가 이상해엄마가 아닌 거 같아너무 무서워 빨리 와!”

언니가 부리나케 수술실로 달려왔다


 

엄마나야나 수정이엄마!!”

엄마는 언니를 바로 알아봤다.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언니한테 이른다

저것들이 날 붙잡아서 천사들과 함께 가질 못했어…. 너무 아파아프다고!” 

언니가 아기처럼 엄마를 달래기 시작했다언니의 달램에 엄마는 누그러졌기 시작했다

어 그렇구나엄마 많이 아프구나아파서 어떡해아이고 우리 엄마 아파서 어떡하니…. 엄마조금만 참아 진통제 놔준대

엄마의 울부짖음은 서서히 잦아들었지만우리 자매는 계속 울고 있었다엄마의 침상을 끌고 함께 병실로 돌아왔다진통제가 혈관으로 들어가자 아이처럼 엄마가 잠들었다그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다엄마가 엄마가 아니라며 무서움에 울던 내가 겁쟁이라서 한없이 부끄러운 날이었다

 

엄마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당연히 저절로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그것은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척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통에 몸부림치는 엄마의 모습이엄마의 아픔보다 나에게 두려움으로 먼저 나에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괴테는 삶은 고통이자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의 고통에도 공감을 하지 못하는 나의 감수성은 가난하기 그지없고그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던 나는 한심한 겁쟁이 아닌가인간은 철저하게 이기적이란 말은 차라리 내게 위안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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