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막둥이의 독립

by 봄날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앞에 선다. 창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하늘을 한 번 살핀다. 오늘은 날이 좀 흐리려나? 혼자 중얼거리며 거실로 눈을 돌린다. 어쩐지 낯설다. 평소와 다른 이 느낌은 뭐지? 유난히 고요하게 느껴지는 집안 공기는 기분 탓일까? 더 이상 흰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진, 빛바랜 벽지마저 쓸쓸해 보이는 아침.


막둥이는 아직 자나? 문득 작은 방으로 고개를 돌린다. 참, 어제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이사시키고 왔지? 뒤늦은 자각에 괜히 머쓱해진다. 아이는 지난봄부터 나름 치열하게 준비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 앞에 좌절하는 겨울을 보냈다. 고민 끝에 지방 소도시에 소재한 학교에 지원했다. 합격 소식만을 기다리며 전전긍긍했던 시간을 지나, 새로운 곳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할 생각으로 설레는 아이를 지켜보며 나도 덩달아 마음이 오르내린 요즘이다.


사람은 하나가 나가는데, 이사 갈 방도 정말 작은 데, 준비할 물건들은 어찌나 많은지. 냄비 하나, 수저 한 벌, 이불 한 채부터 식용유, 수세미, 고무장갑, 주걱, 샴푸, 로션 등등의 소소한 일상품들을 구매하고 챙기며 분주한 한 주를 보냈다. 드디어 어제 방 청소와 이사까지 완료하고 돌아온 길이다. 혹여 먹는 게 부실해질까 봐 냉장고에 밑반찬과 등갈비찜까지 잔뜩 쟁여놓고 왔는데, 그런데도 오늘 아침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아이가 밥은 챙겨 먹었을까, 라니. 부모 마음이 이런 건가보다.


베란다에서 감자를 두 알 꺼낸다. 그새 싹이 올라온 부분은 도려내고, 듬성듬성 칼질해 멸치 다시마 우린 물에 넣고 끓인다. 간장, 마늘, 파 조금 넣고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그릇에 덜어 식탁에 올린다. 남편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 국물이 시원하네, 감탄하며 후루룩 쩝쩝 맛있게도 먹는다. 나는 밥을 한술 뜨다 말고 영상통화를 시도한다. 막둥아, 밥 먹었어? 머쓱한 표정으로, 응, 지금 먹고 있는데, 시큰둥한 녀석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난다.


엄마 껌딱지였던 녀석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매년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힘든 내 귀에 대고 “엄마, 아빠는 맨날 엄마를 힘들게 한다. 그치?” 속삭이던 녀석이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숨 가쁜 나날을 보내다가, 느닷없이 암진단을 받고 꼼짝없이 누워지내던 시절, 빼꼼히 방문 열고 들어와 엄마 옆에 살포시 눕던 녀석이다. “엄마, 많이 아파? 얼렁 나아서 나랑 놀자.” 말하며 반짝이던 까만 눈을, 말랑한 미소를, 어떻게 잊을까. 그 시절 아이들이 있어서, 나는 그 힘든 항암치료를 견뎌낼 수 있었다.


나보다 키가 커진 후에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나를 꼭 안아주던 녀석이니,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기분을 알아채고, 기운 내라고 등을 토닥여주던 녀석이니, 세상에서 엄마랑 장난칠 때가 제일 재밌다고, 엄마가 해 준 밥이 제일 맛있다고, 내 품에 코를 묻고 아, 엄마 냄새, 하며 숨을 들이쉬던 녀석이니, 아무래도 나는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 같다.


엄마가 둥지를 잘 지키고 있을 테니 너는 더 멀리 날아가도 된다고, 지치면 언제든지 돌아와 쉬어도 된다고, 너의 비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사랑한다고, 녀석에게 말해 주고 싶다. 어린 시절 녀석처럼, 다정하게 눈 마주하며,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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