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철이는 표현이 좀 과격한 아이다.
"돼지야, 그만 좀 먹어!"
복도에서 깜짝 놀라 돌아보았더니, 호철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샘, 제 캐릭터가 그래요. 애들은 장난인 거 다 알아요."
"그래도 그렇지. 상처 받는 친구들 생각 좀 해."
"네."
순순히 대답은 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에 호철이가 수학 부장을 하고 싶다고 나섰을 때, 그저 나서기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의 호기로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학 부장은 매 수업시간 또래교사로 봉사하며 친구들을 도와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당연하죠." 호철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내겐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진득하게 문제를 푸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 어딘가 부산스러운 느낌이 강한 아이였다. 결국 희망자가 많아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호철이가 탈락해서 솔직히 조금 안심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수업시간이면 어김없이 또래교사를 하기 위해 나서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에게 그것도 모르냐며 면박을 줘서 교사인 나도 난감해지곤 했다. 그러다가, 중간고사를 보았는데 호철이가 100점을 맞았다. 대박, 난 속으로 깜짝 놀랐다. 교실을 날아다니며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싸움에서 판정패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등학교 수학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늘 교실을 휘젓고 다니며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호철이의 성적이기 때문에 더 놀랐다. 어쩌면 그것도 나의 편견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이후로 자신감이 넘쳐서 수업시간에 대답도 더 크게 하고, 또래교사 역할도 꼬박꼬박 열심히 하던 녀석인데, 오늘은 어째 너무 조용하다. 대답 한마디도 않고 눈도 안 마주치고 묵묵부답 책만 쳐다보고 있다. 무슨 일일까? 문득, 어제 수행평가를 보고 난 뒤에 호철이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들끼리 서로 답을 맞혀 보느라 시끌시끌한 교실 한가운데에서, 아무 말없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니. 또 수행평가에서 사소한 실수를 한 모양이다.
그 여파가 오늘까지 이어졌구나, 싶자 이제 의문이 풀렸다. 1학기 때도 쉬운 문제를 놓쳐서 호철이가 한참 동안 아쉬워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1등급을 놓쳤다며, 자긴 이제 어떡하냐며 그래도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한 시간 내내 침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 아프다. 아이들은 몇 점 차이로 등수가 바뀌고 그로 인해 등급이 나뉘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이 다시금 밀려든다.
매일매일이 평가 상황인 학교에서, 금방까지도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와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종종 아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기도 한다. 자살률 1위의 대한민국은 교육제도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가장 급선무가 아닐까. 휴... 나부터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아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전쟁터일까. 작은 실패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약해서만은 아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치명타를 입도록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 상의 문제이다.
"요즘 애들이 약해 빠졌어, 우리 땐 안 그랬어."
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 때와 너무도 달라진 아이들의 상황을 한 번만 제대로 들여다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말 우리 때보다 약해졌다면, 그건 어른들이 그렇게 키워냈기 때문이 아닐까?
ps) 요즘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주인공들이 '자아'를 갖게 되면서 정작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한탄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차라리 '자아'가 없는 편이 나았다는 의미의 말을 하는데, 꼭 요즘 아이들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주어진 '설정값'대로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른들이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