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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n 25. 2023

지뢰밭인 줄도 모르고

도망치듯 선택한 결혼

일요일 아침, 온몸이 욱신거리고 잠이 쏟아진다. 문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겨우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간다. 남편의 고함치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지금 몇 시야? 당신 아이가 고3이야! 정신 차려!”

그의 입에서 폭탄 세례가 쏟아진다. 고요한 평화협정 아래 있다고 믿고 있던 나는, 갑자기 쏟아진 공격 앞에 여지없이 쓰러진다. 갈래갈래 찢긴다.     


처음은 아니다. 미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유를 알 수 없이 지뢰가 터지면,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 내가 밟은 지뢰는 무엇이었을까? 평화로운 초원인 줄 알았는데, 꽃도 핀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터져 버린 지뢰밭에서 망연자실하고 만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애정 표현에 서툰 나와 달리 다정다감한 사람이라서 좋았다. 결혼 후 나와는 결이 많이 다른 사람이라 다툼도 잦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다정한 아빠이고, 집안일도 도우려고 애쓰는 편이라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다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그의 습성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상시에는 얼마나 순하고 착한 사람인데, 폭발하는 순간은 아주 가끔이니까.      


주말 아침 나의 늦잠이 정말 문제일까? 평일에는 직장 생활하랴, 아이들 돌보랴,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상을 견뎌냈으니, 주말에는 늦잠 좀 잘 수 있지 않나? 사실 주말에도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챙기고, 주중에 쌓여 있던 빨래를 돌리고,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상이 녹록치 않다.  보통의 워킹맘들이 다들 그래왔듯이, 나도 지금껏 최선을 다해왔다.     


남편만 모를 리가 있을까? 그 지난한 시간을 함께해 왔는데? 우린 느닷없이 찾아온 폭풍우도 함께 견뎠고, 진흙 수렁 속에서도 함께 헤어 나왔다. 이제 아이들도 많이 자랐고,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구나, 이제 정말 잔잔한 호수를 즐길 일만 남았구나,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불쑥 지뢰가 터지는 날에는, 무엇이 그의 지뢰 버튼을 누른 것인지, 나는 또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지뢰를 두려워하며 살았다.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이셨고,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집을 비우셨다. 엄마는 집안의 크고 작은 대소사를 모두 혼자 감당하셔야 했고, 어린 동생과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여동생들까지 품고 돌봐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삼십 대 초반의 엄마에게 쉽지 않았을 여정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엄마가 그 힘듦을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이 ‘나’였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프다.     


꼬장꼬장한 시아버지의 지휘 아래, 치뤄 내야 할 제사는 많았고, 어린 시누이들은 까탈스러웠고, 아직 어린 우리들은 손이 많이 갔을 것이다. 믿고 의지할 남편의 일상적인 부재로, 엄마는 자주 내게 이런저런 시댁 식구들- 내게는 할아버지와 고모들- 흉을 보았고, 결론은 늘 내가 엄마 말을 잘 듣고, 착하게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이야기로 가 닿곤 했다. 공부해서 성공하라는 건 알겠는데, 동시에 착해야 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 이루어서 행복해야 한다는 건 무슨 논리였을까? 물론 엄마는 진심으로 나를 응원하는 마음이었겠지만.     


엄마의 하소연에 공감하고 그들- 엄마의 시댁 식구들-을 함께 미워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린 내게, 오히려 그런 순간들은 엄마와 나를 한 편으로 묶어주는 하나의 끈 같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내면에 지뢰가 터지는 날이면, 그 날카로운 파편들은 어김없이 나를 향했다. “너는 그러니까 안 돼!”,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래?” 엄마가 기댈 대상이 없었던 것처럼, 나도 의지할 어른이 필요했는데, 엄마는 정말 몰랐을까?     


“실수해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감싸줄 어른이 내 곁에 없었으므로, 나는 늘 모든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일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혹여 나의 어떤 행동이 엄마의 지뢰 버튼을 누르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고, 눈치 보며 조심해야 했던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짠하다.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로는 더욱, 나는 늘 엄마의 사랑과 칭찬에 목말랐다.      


말없이 설거지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지금 내게 미안해하고 있다. 당신이 아침잠이 없다고 해서 나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여러차례 말해 왔으니까. 그렇게 소리까지 지르며 화낼 일은 아니었다고 뒤늦게 판단하지 않았을까? ‘미안하다’ 말 한마디가 너무도 어려운 그는, 오늘도 아무 말이 없다. 지뢰가 터지고, 나는 그의 사과를 바라고,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그저 세심하고 친절하게 집안일을 돕는 그를 마주할 뿐이다.     


물론 내게도 지뢰 버튼은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도, 버럭 화를 내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내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자라고 나서는 그럴 수 없는 것으로 봐서, 우린 대부분, 나보다 약자라고 판단되는 이에게 지뢰 버튼을 터뜨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아이가 중학생 때, 나를 바라보며 했던 말. “엄마,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에요?”였다. 한없이 순하고 착한 아이였던 아들이 처음으로 내게 대들었던 ,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내게 꽂혔던 순간. 나는 정말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똑같았구나, 뼈저리게 깨달았던 순간.     

 

엄마의 지뢰밭을 피해, 다정하고 상냥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남편의 지뢰밭에서 좌절한다. 내게도 있고,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을 지뢰 버튼을 현명하게,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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