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널 잊지 않았어, 소주야
스무 살 즈음, 처음 독일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근처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가는 길,
어떤 독일 아저씨가 한 손에 술병을 들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순간,
나는 한국 어느 역에서 봤던 알코올중독자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독일 아저씨를 피해 일부러 길을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건 독일에서 아주 노멀 한 상황이었다. 하하
독일 옆 나라, 스페인도 상황은 비슷하다.
스페인어를 배우던 때,
이른 점심으로 어학원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타파스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킨 건 타파스와 상그리아, 맥주.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자연스럽게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회사 출근해 직장동료와 점심을 먹었는데
그가 맥주 한 잔을 시키는 게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일 안 할 생각인가? 왜 마시지?”
다행히(?) 딱 한 잔이었고, 그 이후엔 물을 마셨다.
그렇다,
여기서는 자기가 조절할 수 있다면,
술을 어느 정도 허락이 된다.
아주 추운 겨울인 요즘,
스페인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 테라스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신다.
코와 손이 빨개져도 개의치 않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 이 사람들 진짜 맥주랑 테라스에 진심이구나’ 싶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누구를 만나든 자연스럽게 맥주나 와인을 시켜 마신다.
알코올중독자는 되진 않겠지만, 논 알코올로는 살 수 없는 나라다.
한국에서는
일이 끝난 저녁이나, 여행 중 저녁에 마셨다면,
스페인은 아무 때나 마신다.
이른 점심, 점심, 저녁, 늦은 저녁
한국에서는 소주만 마시던 내가,
스페인에서는 맥주, 와인, 칵테일 다 마시고 있다.
소주만 빼고,
왜?
소주가 엄청 비싸다.
맥주에 다섯 배.
게다가 소주에 어울리는 안주도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소주는 스페인에서 안 마시게 된다.
스페인에 살기 시작한 첫 5년 정도는
한국의 소주와 펄펄 끓는 국이 정말 먹고 싶었는데,
시간이 더 지나니까
뇌가 이제 체념을 한 건지 인지를 한 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가기 전까지는 잊고 산다.
한국 = 소주
스페인 = 맥주
두 나라 모두 난 아마 무알코올자로는 살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