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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8. 2023

기획자의 메모리노트 3 :

못 가본 길을 언제까지 그리워만 할 것인가

다재다능의 불운      


  기획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의 변화를 가져올 목적을 확인하고, 그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행동을 설계하는 것’을 뜻한다. 행정이나 조직 관리에서의 기획은 원하는 목적에 적합한 행동을 설계한다는 의미고, 방송, 영화, 게임 등의 콘텐츠 제작에서 기획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어떤 분야든 ‘일을 꾀하여 계획을 한다’는 점에서 기획자는 남들보다 두뇌회전이 빠르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한 데로 모아 전혀 다른 생각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창의성을 타고나야 한다. 꾀하긴 하되 늘 새로워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무언가 새로운 일을 잘 도모하고 그 계획을 짱짱하게 세워내는 사람들의 특징은 재주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일, 한 가지 직업만 가지고 살지 않으며,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고,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어렸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칭찬은 팔방미인이었다. 특별히 배우지 않았지만 늘 무언가 배우는 친구들보다 더 잘했다. 피아노, 미술, 체육, 무용, 서예 등 예체능과목도 항상 두각을 나타냈고, 대회가 있으면 꼭 상을 탔다. 심지어는 학년이 바뀐 학기 초 실시하는 환경미화상도 내가 주도하면 언제나 1등이었다. 한 번은 학교에서 통일 관련 표어 대회를 했는데 한 스무 개를 미리 써놓고 하나에 오백 원 씩 팔았던 기억도 있다. 매년 4월 21일 과학의 날 포스터와 독후감대회는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지금 돌아보면 해당 분야에 소질을 타고났다기보다는 주어진 과제를 전략적으로 분석하고 평가를 잘 받는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이십 대 때 나는 광고기획, 영화기획, 이벤트 기획, 전시기획을 두루두루 하게 되었다. 서로 인접분야이면서 기획의 과정에서 유사한 점이 많아 분야를 넘나들면서 기획자로서 잔뼈가 굵어진 경우이다. 하지만 무수히도 다른 직업으로 전환할까 고민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다른 재미를 찾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작가가 되어 보겠다고 아카데미를 접수했고, 신춘문예 당선을 목표로 소설공부도 했다. 직접 고객을 만나야 진정한 마케팅을 알게 될까 싶어 두 번의 자영업 진출도 과감히 실행한 바가 있다.      


  동네 단골 옷가게를 인수받아 직접 동대문에서 사입을 하고 쇼핑몰도 만들고 스스로 피팅 모델이 되어 2년 정도 운영을 했다.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아무리 진상인 손님도 진정성은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매장을 오픈 한 첫날, 이전에 운영하던 친구에게서 구입한 스웨터를 환불받으러 온 손님이 있었다. 열 시에 오픈을 했는데 첫 손님이었다. 니트류는 한번 입으면 늘어지기 때문에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한 상품에 속한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한테 맞지가 않고, 아직 겨울도 끝난 것 같지 않으므로 빨리 다시 팔라고 아침부터 왔다고 논리를 펼치셨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환불을 해드렸다. 그런데 손님이 가고 나서 옷을 자세히 보니 목 주변에 라면 국물 같은 자국이 묻어 있었고, 누군가 입었던 흔적이 역력했다. 손님은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나중에 다른 단골손님들이 그 손님은 대표적 환불손님이고 진상 중에 진상이니 조심하라고 전해주었다.      


  환불손님은 매장이 위치한 건물 꼭대기의 에어로빅 피트니스의 회원이었는데 우르르 같은 회원들을 몰고 다니는 분이었다. 그날 이후 항상 아침에 운동을 끝내고 매장을 들리셨고, 자신의 늦둥이가 발달장애를 앓고 있어서 예쁜 옷을 입히면 다시 벗어 자신을 속상하게 한다며 늘 걱정을 늘어놓곤 했다. 그 손님의 주된 이슈는 자식걱정이었다. 옷가게는 문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자신의 화두가 하나씩 있다. 나는 정성껏 아이가 입을만한 옷을 추천해 드렸다. 얼마든지 교환해 드릴 테니 입혀보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다시 가져오시라고. 이 손님은 내가 매장 운영을 그만두게 된 날까지 쉬지 않고 다른 손님들을 데리고 오셨다. 진심이라는 건 늦어도 전달이 되더라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아 한잔 두 잔 와인을 마시다가 와인 바를 차린 적도 있다. 와인공부도 하고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내가 알코올을 좀 더 분해하는 능력만 있었더라도 몇 년은 더 운영했을 텐데, 역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바람에 조그마한 어려움이 닥치면 그걸 극복해 나가기가 정말 싫었다. 와인 바를 그만두면서 배우게 된 것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업종이라는 것이 역사가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밑바닥부터 그 업을 해온 인력과 그들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옷 장사, 술장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옷장사보다 술장사가 어두운 면이 많기 때문에, 그 업에서 시작해 매장을 개업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지 못하는 관행이 구석구석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추운 겨울의 주방이 너무나 싫었다. 유난히도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주방의 오븐을 껴안아야 할 정도로 추운 겨울날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 주방문을 열었더니 거짓말 조금 보태어 고양이만 한 쥐가 싱크대 위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얼른 다시 문을 닫고 저 쥐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 장사를 이어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 대걸레를 찾아 문 앞에서 문고릴 잡았지만 나는 끝내 문을 열지 못했다. 바로 두 번째는 어떤 위기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일 말고 할 줄 아는 다른 일이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궁극에 나 역시 이따위 추위와 쥐를 극복해 가며 고생을 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와인 바도 접었다.      


  옷가게나 와인가게나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생생한 경험을 얻었다. 내 인생에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돈과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쌓아둔 느낌이랄까. 두 번의 자영업을 통해 책상에 앉아서 문자만 쓰고 있었더라면 절대 알 수 없는 현장공부를 처절하게 마쳤다. 두 번의 자영업을 경험 삼아 스타트업 창업에도 도전했다.      


  다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못할 일이나 상대 못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한번 가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해보라는 것이다. 우아한 콘셉트의 의류매장 주인이 평생소원이라면 말로만 부럽다 하지 말고 내가 자주 가는 옷가게 사장님부터 만나볼 일이다. 나는 사입을 배우려 사입삼촌의 동선에 따라 동대문을 따라다녔고, 도매 사장님과 친하게 지내며 동대문 시장의 메커니즘을 배웠다. 쇼핑몰을 오픈해 대박이 나는 아이템의 판매 사이클과 마케팅 방법을 배웠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으로 동네에 주류와 식자재를 공급하는 영업맨을 소개받아 종업원을 구하고 장사하는 법도 배웠다. 정말 하고 싶으면 외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부러워하지 말고 직접 만나고 뛰어들어 보라는 것이다. 내 몸으로 내 손으로 업을 만지고 익혀야 한다. 누군가를 시켜서 하는 일은 내 일이 되지 못하고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었던 그 희망과 욕구를 절대 채워줄 수가 없다. 막상 해보면 결코 우아하기 만한  옷가게 사장님이 아니고 멋지기 만한 와인바 사장님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찾고, 만나고, 열고, 들어가고, 스스로 닫아야 못 가본 길에 대한 후회가 없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았다는 후련함이 생겨야 미련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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