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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8. 2023

이제 그만 용서합시다

< 기획자의 저녁_1 >

주변에 능력보다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있다. 


  분명 학창 시절엔 무엇으로 봐도 내가 더 잘 나갔는데 말이다. 처음엔 한 계단 정도로 보이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더니 잡지나 신문, TV 같은 대중매체에도 소개되고 결국 유명인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친구라고 페이스 북을 로긴 할 때마다 알 수도 있는 사람으로 소개되어 어느 날 접속해 보면 그 친구의 친구는 이미 5천 명이라고 뜬다. 친구신청을 해볼까 했던 마음은 알 수 없는 상처로 번지고 못난 마음에 같은 이름을 네이버나 구글에 다시 쳐본다. 그 친구가 쓴 논문제목이나 개인정보를 알아내어 다시 그 정보로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가 대체 내가 무엇을, 어떤 스토리를 찾고 있는 건지 애초의 목적을 문득 잃어버리곤 한다.      


  혹시 내가 찾고 있었던 이야기는 그 친구의 실패나 좌절에 대한 정보는 아니었을까. 그 친구의 성형하기 전 모습을 잘 알고 있는데 잘 뒤지면 어디서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정도  나오지는 않을까. 현재의 남편이 알지 못하는 그 친구의 복잡했던 연애사도 알고 있는데 그래서 나는 만나기 싫을까. 묘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친구의 기사를 바라보던 그날, 나는 왜 친구의 성취를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기획자는 저녁이 있는 삶을 많이도 기획하는데 정작 본인들은 저녁을 여유 있게 보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몇몇 외향적인 사람들은 취미생활도 즐기고 문학, 음악, 미술 같은 동호회 성격의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하지만 여간해선 유지하는 경우를 못 봤다. 싫증을 잘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술이나 담배, 도박 같은 유흥에 잘 빠지는 것도 아니다. 손을 대긴 해도 어떤 것인지 알고 나면 금방 손절하며 어느 선을 지키는 쪽이다. 알기 전까지 궁금해서 그렇지 알고 나면 흥미를 잃는 것이 기획자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저녁시간에 무엇보다도 야근을 하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사실 아침, 점심, 오후, 저녁 중 일하지 않는 저녁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지 못하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그냥 일을 하면서 저녁을 보낸 시간이 더 많다. 일을 하면 외려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일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를 잊어버려서 그렇게 느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작 시간이 나도 휴식하거나 충전하기 어려운 습관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내가 추천하는 건 나만이 아는 그 친구를 이제는 용서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일찍 들어와 두어 시간 아무 방해도 받지 않을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땐 아주 근사한 글라스에 진한 와인 한잔을 권하고 싶다. 겨울과 봄이라면 딸기, 여름이라면 수박, 가을이면 포도와 같은 과일 조금, 쓰고 텁텁하기만 하면 속도 쓰리기 때문이다. 까망베르나 에멘탈 치즈 조금, 그리고 동전크기의 야채크래커, 이는 가벼운 스낵이 있어야 청승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접시에 세팅하고 거실에 앉는다. 유튜브에서 그 친구와 같이 지냈던 시절에 유행했던 가요나 팝송을 찾아 반복해 재생해 놓는다. 추억소환으로 이제 그 친구를 용서할 준비는 끝났다. 어느 노래 가사에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이라는 구절도 있지 않은가. 묵직한 와인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나는, 나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먼저 성공한 그 친구를 기꺼이 용서해 주기로 발표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친구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기회를 반드시 주겠노라 다짐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뻐하고, 나쁜 일이 있을 때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감정표현을 하는 것이 마치 세상에 지는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별다른 느낌이 없는 척, 그렇게 자기감정을 속이고, 남들 앞에 자주 서다 보면 고통과 자극에 솔직해지지 않고 삐뚤어지기 쉽다. 괜한 열등감으로 상대의 성취를 축하해주지 못하고 살짝 폄하하거나 냉정한 평가를 하기 쉽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다가오는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통과시키고 비로소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성공한 친구의 소식을 찾아보라. 친구의 성공을 미소 지으며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다면 나는 썩 괜찮은 사람일 것이다. 아직은 내가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질투와 시기, 혹은 쓸데없는 자기 연민을 털고 일어나는 방법으로 용서하는 저녁을 보내시라. 내 감정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솜털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느껴보시라.      


  어느 겨울 저녁, 기획자의 거실엔 눈물이 아닌 미소가 가득한 그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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