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쓰는데 왜 몸이 아파요?
< 기획자의 저녁_3 >
사람이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취하는 자세는 어떤 것이 있는가.
사무실에서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앉아서 컴퓨터를 보고 있는 것에 할애한다. 그러므로 책상과 의자를 절대 대충 세팅하면 안 된다. 특히, 의자는 일일이 앉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여성들은 오래 앉아 있을 경우 순환장애로 반드시 살이 찐다. 다음은 동선의 이동을 위해 걷거나 서있는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게 되면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한 운전자의 자세, 탑승자의 자세가 사실상 전부 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기획자로서 몸을 움직이고 활용하는 행위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행위를 반복하며 기획자는 오늘도 내일도 살아간다. 달리 특별한 자세로 기획하는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기획자로서 몸을 심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데, 몸을 쓴 게 아니라 머리만 쓴 것 같은데 왜 각종 몸의 부위들은 결국 탈이 나고 병이 생기는 걸까. 물론 사람이 나이 들면 여기저기 노화로 인해 고장 나는 부위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기획자가 기획하는 일 때문에 몸이 망가지는 현상을 지적하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동거 동락했던 동료들 중에 제안서 제출 마지막 날 밤을 새우면서 구토를 하거나 속이 뒤집히거나 아랫배를 움켜쥐었던 직원들을 자주 보았다. 어떤 이는 잠을 쫓는다고 믹스커피만 서른 잔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멀쩡히 같이 밥 먹고 돌아와 혼자만 급체를 했다고 병원에 가보니 위궤양이라 진단받은 사람. 꼭 일요일 새벽에 야식 먹고 장염 걸려 월요일 못 나오는 친구. 중요한 시기에 면역력 저하로 독감에 걸리는 친구. 야근을 오래 하다 보면 집중력 저하로 순간적인 위기능력이 상실될 때가 있다. 경미한 교통사고나 길거리에서 잘 넘어지기도 한다. 공황장애나 분노조절 장애 같은 정신과적인 문제도 빈번하다. 물론 이 또한, 우리 직업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지만 일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 혹은 사람 간의 갈등이 악화되었을 때 같은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지는 시점에 꼭 몸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후에 스트레스를 조절하거나, 반응 및 관리하는 방법을 찾기 전에 애초에 스트레스에 노출되어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로 몸을 잘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오랜 세월 일에다가 몸을 맞추며 살기 때문에 일정시간이 지나면 몸이 아우성을 치는 것이라고 본다. 무엇이든 ‘일을 마치고’, ‘일을 끝내면’, ‘일하는 동안에는’과 같은 조건부로 몸에서 보내는 최초 신호를 외면하고 방치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몸을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 몸뚱이 하나를 잘 다스리고 달래고 이끌어야 앉아 있어도 서있어도 괴롭지가 않은 것이다.
언젠가 토크쇼에 나온 연기자 김혜자 님이 공감 가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수탉이 온 힘을 다해서 목청껏 운 다음 쓰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도 연기를 하면 그 수탉처럼 한다고 했다. 배역을 받으면 온 힘을 다 쏟아부어 작품을 하기 때문에 한 작품이 끝나면 그냥 널브러져 있다고 말이다. 연기 말고는 잘하는 게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젊었을 땐 나도 한 프로젝트를 죽기 살기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마치고 나면 거의 시체놀이 수준으로 며칠을 보내곤 했다. 마치 아이라도 낳은 산모처럼 무방비 상태로 그렇게 정신 줄을 놓고 지냈다. 실제로 제안서를 하나 끝내고 나면 아이를 한 명 낳는 느낌이 들었다. 어떨 땐 죽을힘을 다해 낳은 내 아이를 핏덩이채로 누군가 쏙 데리고 가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 얼굴도 익히지 못했는데 낳자마자 빼앗긴 기분이 들었달까.
그렇게 모질게 데리고 가더니 막상 수주에 실패하거나 협상 부적격이라는 통보라도 받는 날엔 그 아이가 죽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못된 누가 착하고 예쁜 내 아이를 죽였다고 까지 느껴졌다. 그런 날엔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도무지 다음 프로젝트에 임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또 아이를 잃을까 봐 겁부터 나는 것이다. 반대로 당선이 되었을 땐 마음껏 기뻐하기보다 앞으로 잘 모르는 누군가 내 아이를 기르면서 망쳐버리면 어떡하나, 그 아이가 낳아준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하였다. 그렇게 내가 구상한 기획안과 나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지나간 과정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세월이 있었다. 영화배우들이 혼자 오래 살면 전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다음 작품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그 꼴이었다. 이러한 대단히 소모적인 패턴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내가 결혼해서 정말 내 아이를 낳고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기획이 나의 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지금은 그 아이에게 지나친 애착이 생길까 봐 그래서 그다음 아이를 가지고 낳는데 방해가 될까 봐 언젠가부터 낳자마자 그 사실을 잊어버리려 노력했고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괜찮아진 것이니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인간은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잊으려고 노력한다면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노력하는 과정에서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소환해야 하기 때문에 더 분명해지거나 더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무엇을 잊기 위해 술 한잔 해야지, 하는 마음은 잊지 않고 더 기억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잊으려고 하는 사실을 소환하지 않고 자연스레 옅어지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대안일 것이다. 이것은 절망의 총량을 줄이기 위해 희망을 가지라는 논리와 비슷하다. 우리 몸은 행동하면서 다짐을 하면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때 우리 몸뚱이가 좋아하는 종류의 행위로 평소 보험들 듯이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아 놓는 것이다.
첫 번째, 나는 요즘 일과 휴식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편이다. 안 할 때는 아무것도 쳐다 도 안 본다. 어정쩡한 곳에서 뭐 좀 하다가, 또 누워 있다가, 다시 노트북을 켜고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하루를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 아파서 나갈 수 없는 상황, 해외 특수한 환경 정도의 특별한 변수 없이는 쉬려고 한 시간에 일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다. 한때는 회사에서 작업하다 그 파일을 그대로 복사해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휴양지에서도 워라밸을 실현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언제 어디서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근사한 디지털 노매드처럼, 싸고 풀고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대로 가져가서 그대로 가져왔으면서도 그래도 다음에 또 일 뭉치 몇 조각 정도는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다녔다. 그런 생활이 전문가이고 프로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고, 기만이고, 낭비다. 정신과 의사는 뇌도 쉬어야 하는데 그렇게 쉬는 시간을 주지 않으면 뇌는 계속해서 잠 잘 때도 가동해야 하는 줄 알고 긴장상태를 유지한다고, 경계를 지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참 어리석게도 나는 열심히 일하는 건 언제나 자신 있는데, 열심히 노는 방법은 잘 알지 못했다. 더 심각한 건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그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실천한건 내 몸이 기분 좋아하는 일을 반복하기였다.
특히, 쉴 때 자기만의 충전 법을 가지면 더 좋다. 나의 경우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면 반드시 머리를 정리한다. 여기서 정리는 헤어염색, 클리닉, 스타일에 관한 정리이다. 그리고 2, 3주마다 방문해 정기화한다. 미용실에 가서 잡지라도 뒤적거리면 신상품이 보이고, 드나드는 사람들의 관심사도 알 수 있다. 동네의 퇴근 동선에 최적화된 로드샵을 꼭 하나 만들어 놓는다. 어느 비 오는 하루 느닷없이 방문해 신상, 세일할 것 없이 싹쓸이를 하고 온다. 갈 때마다 다소 큰 금액이지만 현금으로 계산하고 슬며시 부탁을 해본다. 직업상 늦게 끝나다 보니 매장에 도착하면 다른 가게들 문 닫고 난 후 일 텐데, 혹시 전화하면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매장 주인이라면 무조건 오케이다.
동네에 단골 마사지 샵도 만들어놓고 나와 합이 잘 맞는 원장님을 찾는다. 그리고 화장품은 그 원장이 추천해 주는 것만 사용한다. 건강식품을 아는 지인에게 기간마다 대량 주문하여 그의 실적을 돕는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주치의를 두고 한 달에 두세 번 건강관리를 받는다. 자주 가는 병원이다 보니 병원에서 알아서 독감이니, 백신이니 검사와 주사에 대해 관리를 해준다. 병원은 회사 동선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나는 이렇게 개인정비에 해당하는 미용, 의상, 건강 등의 분야에 전문가를 만들어놓고 해당 영역은 철저하게 그분들에게 맡긴다. 그리고 충전의 시간이 왔을 때 고민하지 않고 순서대로 방문을 하면서 다시 에너지를 채운다. 내 방법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개인 의료정보를 관리하는 주치의는 꼭 추천하고 싶다. 지위가 높아지면 챙겨야 할 크고 작은 일의 종류가 많아지기 때문에 무엇 하나 새롭게 루틴을 만드는 게 참 쉽지가 않다.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 의하면 감기가 걸려서 학교를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학교가 가기 싫어 감기 걸림을 허락한다고 한다. 병원 가는 것이 뭐가 즐겁나 하겠지만 나는 병원을 쉬러 간다는 기분으로 간다. 아프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기에 아플 내야 아플 시간이 오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 몸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살아 숨 쉬는 동안 몸의 작동을 원활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내 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을 잘 파악하여 오래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임하며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를 잊고 비우기 위해 실제로 내 몸에 물리적인 자극을 주도록 한다. 몸은 다시 깨워지고 마음은 다시 열릴 것이다.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에 따라 생각을 모으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나는 기억을 클리닝 하는 방식으로 내 몸을 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