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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 :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힘

술술술 글쓰기-01

by 날마다꿈샘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나중에 좋은 인연으로 발전되어 내 인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연히 읽게 된 책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미리 도서 목록을 만들어 읽고 싶은 책을 읽기도 하지만 가끔씩 서점이나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을 읽기도 한다.



이 책도 그랬다. 아주 '우연히'였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리라 마음먹으면서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찾고 있었는데 도서관 책장 한 귀퉁이에 '필력'이라는 굵은 글씨가 눈에 딱 들어오는 거다.



'필력' 위로 자그만 글씨로 적힌 부제는 더 마음에 들었다.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힘'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글쓰기. 읽을수록 참 기분 좋아지는 문구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의 가치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더 나아가 책 한 장을 넘기자 '들어가는 글'을 읽기 전 문장이 내 마음을 정조준하여 꽂혔다.


'필력(筆力)은 생각과 마음을 글로 전하는 능력입니다. 생각한 대로 쓰고 쓰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더 이상 안 읽어도 되겠다. 이 문장에서 나는 얻을 것을 다 얻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지금 내가 글쓰기에 목매달고 몰입하는 이유를 대변해 주는 문장인 것만 같아서 이 문장에 시선이 딱 꽂혀 다음 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 시선을 확 붙들어 맸는데 책 전체를 읽으면 얼마나 더 많은 문장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을까 너무 궁금하여 다음 장을 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1. '잘 쓴 글' 혹은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


-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

- 주제의식이 명확한 글

- 합리적인 논증과 주장이 담긴 글

- 문장이 명확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글

- 감동을 주는 글


하지만 이런 정의는 잘 쓴 글에 맞는 정의가 아니라고 한다. 왜냐면 결론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과 먹히는 글은 별개다. 좋은 글이란 내가 보기에 좋을 뿐이다. 그러나 먹히는 글은 나 자신이 아닌 독자의 눈높이를 정조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먹히는 글은 나의 만족과 무관하다는 얘기다. 좋은 글은 자기만족적인 이기적 성향을 갖고 있다면, 먹히는 글은 타인을 만족시키는 이타적 성향을 띤다. 따라서 독자 선정이 중요하다. 좋은 글이라는 자기만족성에서 벗어나 먹히는 글이라는 타인지향성을 추구할 때, 글의 화력은 세진다.



2. 화살처럼 꽂히는 글의 조건은?


글을 구성하는 요소는 메시지, 내용, 표현 크게 이 세 가지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화살'로 비유해 보면 이렇다. 화살촉(메시지)은 과녁을 파고들어 가는 날카로움이 생명이다. 꽂혀서 후벼 파야 한다. 메시지가 뭉툭해서는 안 되고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아야 한다.

화살촉은 화살대(내용)에 실려야만 과녁까지 갈 수 있는데, 흔히 말하는 콘텐츠, 소재가 이에 해당한다. 메시지가 적합하고 사례가 많을수록 화살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글이 힘 있게 날아가려면 콘텐츠의 질이 받쳐줘야 한다.


화살깃(표현)은 화살이 안정적으로 공기를 뚫고 나가도록 해준다. 화살에 달린 깃의 모양과 크기가 적절하다면 마찰력을 최소화시켜 화살의 속도를 높인다. 슬픈 콘텐츠를 장난스러운 표현으로 망쳐서는 안 되고 진중한 삶의 조언을 희롱 섞인 구어체에 담아낼 수 없다. 재치가 돋보이는 내용이라면 가볍고 경쾌한 단어 사용이 적합하다.


화살촉(메시지)-화살대(내용)-화살깃(표현), 이 세 가지가 단일체가 되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먹히는 글의 조건이 완성된다.



3. 첫 문장보다는 첫 문단에 집중하라


글쓰기 초보자라면 '첫 문장 쓰기' 조언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문장으로 시작해 일단은 글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첫 문장을 구사하느냐는 이 단계의 중점 사안이 아니다.


독자는 첫 문장만으로 글을 판단하지 않는다. 첫 문장이 끌리지 않는다고 읽기를 바로 그만두는 사람은 없다. 글 읽기를 포기하는 것은 첫 문장 때문이 아니라 중언부언하거나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모를 때, 난해한 문장이 계속 이어질 때이다. 글쓰기가 반복됨에 따라 첫 문장 감각도 자연스럽게 붙기 마련이다.


첫 문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첫 문단이다. 첫 문단은 그 뒤에 나올 모든 글을 이끄는 골격이고, 화두의 제시며, 호기심 유발의 선봉장이다. 읽는 이를 사로잡는 장치가 바로 첫 문단이다.



4. 완전한 글을 많이 써보라


글이란 결국 결론을 내리는 일이며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다. 결론이 없는 서론과 본론은 '아직 끝나지 않은 글'이 아니라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글'이다. 글을 많이 써보는 것이 배움의 원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글을 온전히 완성한다는 전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자기만의 글쓰기 패턴을 만드는 데 가장 효과적인 훈련이 바로 결론을 포함하는 완전한 글을 많이 써보는 것이다.


글을 쓰기 전에 '결론을 내리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였고,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이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결론이 필요하다. 얼마나 뚜렷한 결론이 있느냐, 이것이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느냐의 기준점이다.



5. 퇴고에서 하면 안 되는 일


퇴고는 글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마지막 단계이다. 하지만 퇴고에 지나치게 의지하게 되면 초고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일단 떠오르는 대로 써놓고 보자는 태도를 습관화할 수 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퇴고란 마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글의 뼈대인 구성을 고치는 일을 퇴고 단계에서 해서는 안 된다. 전문 작가들도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퇴고 시 '오류'를 수정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 구성 자체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퇴고를 하면 할수록 글은 더 좋아진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보다 '초고를 어떻게 쓸지 생각하면 할수록 글은 더 좋아진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6. 필사할 시간에 글을 해체하라


베껴 쓰기는 초보자의 문장 감각을 키워주는데 유용하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베껴 쓰기를 계속하는 것은 특정 작가의 문체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나와는 다른 어휘 선택, 전개 방식, 묘사 기술을 탐구하기에 베껴 쓰기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


초보자에게 베껴 쓰기는 '문장의 기본'을 닦는 용도로 적당하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는 주어-서술어 불일치인데, 베껴 쓰기는 이 실수를 교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이 수준을 벗어나면 베껴 쓰기를 그만두는 것이 좋다.

베껴 쓸 시간에 '문단 분석 및 요약'을 꾸준히 할 것을 권한다. 하나의 완성 문고를 문단별로 쪼개어 도대체 이 작가가 어떻게 글을 전개하는지를 살펴보면 나름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7. 절제가 있는 감정을 쏟으라


글에는 글쓴이의 내면 풍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글을 쓰는 당시의 감정이 글에 투영된다. 어떤 글에는 분노가 있고 어떤 글에는 무심함이 묻어난다. 쓰기 싫어 억지로 쓴 심정도 보인다. 글을 쓴 당사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읽는 이에게는 고스란히 전해진다.


'글에 감정이 반영된다'는 것 자체는 별문제가 아니다. 어떤 작가는 폭풍같이 힘 있는 문체로 사랑받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소소하면서도 친밀감이 느껴지는 글로 동질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차갑고 냉정한 내면이 읽히는 글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무절제한 감정을 마냥 쏟아내기만 하는 문장을 추구하면 안 된다. 글을 쓰기 전에 감정을 컨트롤하여 '절제'가 동반된 감정을 쏟아야 한다.



8. 기자의 글쓰기 노하우 훔치기


기자의 글쓰기에는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절체절명의 생존 조건, 바로 마감시간, 즉 데드라인이다. 하나의 원고를 제시간에 마무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의 절박한 글쓰기를 오랫동안 훈련해 왔다는 점이다. 글의 완성도가 어떻든 일단 마무리하는 힘은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자의 글쓰기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은 '팩트'에 대한 취재력과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현 상황을 보여주는 팩트를 모으고, 분류하고, 중요성을 판단하는 일을 매일 한다. 이 과정에서 팩트에 대한 이해는 깊어지고 팩트와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는 능력이 탁월해진다. 이러한 과정은 글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양질의 재료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구성하고 마무리를 짓는 힘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취재 대상이고, 경험하는 모든 사건이 글감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치 큰 사건처럼 객관화시키는 것, 당사자를 인터뷰해 보는 것, 일련의 기사 형태로 써보는 것은 일반인이 기자의 글쓰기 노하우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9. 비상탈출구 마련하기 : 글쓰기 시동을 거는 나만의 의식, 루틴 만들기


쓰긴 써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며, 과연 쓸 수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 때 세 가지 방법을 적용해 보면 좋다.

1) 누워서 머릿속에서 글쓰기 : 침대에 누워 눈 감기- 휴대전화 끄기 - 최대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외부 감각 차단하기 - 생각에 집중하기

2) 다른 사람 인터뷰하기 : 지인들과 기분 좋은 자리에서 만나 의견이 필요한 주제에 대해 물어본다. 글쓰기에서 고민이 되는 지점을 공유하고 의견을 듣다 보면 의외의 수확을 얻을 때가 많다.

3)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생각 속을 들여다보려고 애쓰기 :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대화하는 모습, 목소리, 체취 등을 오감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마치 내가 그들의 생각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글쓰기의 매력과 가치를 경험하면서 글쓰기가 재미있어졌다. 쓰다 보니 써지고 쓴 것들이 하루하루 쌓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쓸 때와 달리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어느 순간 의무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왜 이렇게 글쓰기에 목매달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생각한 대로 쓰고 쓰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고 한다. 순간 글쓰기는 의무가 아니라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글을 쓰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냥 쓰자.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접고. 필력이 좀 없으면 어떤가.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글 속에서 뛰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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