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단상-08 / 능소화
골목길을 걷다가 담벼락 너머로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능소화를 마주쳤다.
처음엔 이 꽃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시선이 머무니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이름을 찾아보니 능소화란다.
옛 시조나 한시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고운 이름이다.
능소화(凌霄花)
凌 : 능가할 능 / 霄 : 하늘 소 / 花 : 꽃 화
한자 뜻풀이를 해보면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뜻이다. 높은 곳까지 자라나는 특성 때문일까, 하늘에 닿을 듯 담장을 타고 유유히 오르는 그 자태가 이름과 썩 잘 어울린다.
옛날에는 양반집 마당에서만 키웠다 하여 '양반꽃'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또다른 이름 : 금등화)
몇 해 전 가족 여행길에 들렀던 한옥 앞마당에서도 능소화를 본 적이 있다. 기왓장 아래로 줄줄이 피어 있던 그 꽃은 한옥과 유난히 잘 어울렸다.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주황색 트럼펫 모양의 꽃들이 줄지어 피어 있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 대고 조용히 노래 부르는 것 같다.
화려한 자태에 멀리서도 눈에 띄는 그 꽃은 가까이에서 보니 왠지 모르게 단아하고 서늘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깊이 들여다볼수록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능소화는 담장 위에서 피는 꽃이다.
줄기를 타고 천천히 위로 오르며 미처 높이 닿지 못한 꽃들은 담장 아래를 지나는 이에게 고개를 떨구듯 조심스레 인사를 건넨다.
그 모습이 어찌나 겸손하고도 다정한지, 그 분위기에 취해 내 마음도 차분해진다.
능소화는 교회 앞마당에서도, 오래된 주택가 담벼락에서도 피어난다.
어떤 공간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은은하게 주변을 물들인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도 아름답다.
한때 절정을 지나 땅으로 내려왔지만 그 찰나에도 그 품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도 능소화처럼 겸손하고 다정하며, 화려하지 않아도 주변을 은은하게 물들이는 사람이고 싶다.
꽃을 통해 또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