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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빛과 실 2 - 한강/문학과지성사

식물이 가르쳐준 여름 :: 매 순간 나를 안아줬다

by 날마다꿈샘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 없이도 견딜 수 있었던 우리 집은 작년부터 에어컨을 켜기 시작했고, 올여름엔 하루도 빠짐없이 냉방에 의존해야만 했다.

창문을 열면 뜨거운 열기가 들이치고 바깥 외출은 그 자체로 모험이 되었다.



더위는 사람만 지치게 한 게 아니었다.

가끔씩 물만 줘도 잘 자라던 베란다의 식물들 역시 이번 여름은 다르게 반응했다. 누렇게 변색되거나 잎을 축 늘어뜨리며 온몸으로 더위를 호소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이 여름을 견디느라 힘겨웠다는 사실을 식물들이 말없이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은 자란다.

잎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운다.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이 여름을 나도 그렇게 뚫고 나아가야겠구나.’

더위 속에서도 쉬지 않고 자라는 생명체들을 보며 내가 가진 핑계들이 하나둘 희미해진다.



문득 한강의 에세이 <빛과 실>이 떠올랐다.

그녀는 마흔여덟에 처음 자기 명의의 집을 갖고, 네 평 남짓 좁은 마당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북향 정원이라 여덟 개의 탁상용 거울을 마당에 설치했다. 반사광을 쬐어주며 15분마다 거울 각도를, 사흘에 한 번씩 거울 위치를 바꾸며 식물에 빛을 선물했다.

그녀의 그 수고스러움은 생명을 사랑하는 이의 태도였다.




한강은 말한다.

정원을 갖기 전까지는 햇빛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고.

잎사귀를 통과해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을 보며 느낀 기쁨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근원적인 감각이라고.

그리고 나무와 살아가는 일이 자신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고.



그 문장을 읽고 나는 나의 베란다를 다시 보게 되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제각기 다른 생명력을 품은 식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작은 공간.

그곳에서 나는 식물이 나를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더위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초록의 생명들 덕분에 나 역시 여름을 견디고, 나를 다독이며 살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여름을 통과하며 조금씩 변화한다.

식물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더위 속에서 버틴 우리의 마음도 분명히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처서가 지났다.

여전히 밤에도 덥지만 풀벌레 소리에서 가을이 느껴졌다.

아무리 덥다 덥다 해도 여름은 지나갈 것이고 또 가을은 올 것이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할 나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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