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선생님께서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너는 커서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 이때까지만 해도 일 년마다 꿈이 바뀌었다. 경찰부터 시작해서 프로게이머, 교사, 모델, 배우, 프로그래머 등 하고 싶은 직업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부터 내 꿈은 사라졌다. 공부를 뭐 때문에 해야 하는지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모의고사나 시험기간이 되면 나름 공부하는 척이라도 했다. 고등학교를 곧 졸업할 때 선생님께서 상담을 하자고 하셨다. "졸업 후 계획은 무엇이며 대학교를 간다면 어떤 대학교를 가고 싶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의 나는 지금 이 직업을 선택한다면 평생 이직 업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였다. 결국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였다.
미성년자일 때의 나는 직업이 많았다. 갖고 싶었던 것은 많았지만 부모님한테의 나는 갖고 싶은 것이 없는 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교 때는 주말마다 새벽 축구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인력소를 나갔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열 번 나가면 한 두 번 일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인력소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받아주지를 않아 다른 일을 하였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을 하였다. 잠깐 고기 패티를 굽고 대부분 쓰레기통을 뒤져서 분리수거를 하는 일을 하였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켜준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하며 일을 해왔다.
이후에도
마트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계산하는 일
전단지를 나눠주고 붙이는 일
한정식 집에서 뚝배기를 치우는 일
막창집에서 막창을 구워주며 서빙하는 일
쌀국수 가게에서 서빙하는 일
등 여러가지 일들을 가리지 않고 해나갔다.
20살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끝내니까 그때서야 나에게 인생이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한 것 같다. 인생이 너무 허무하기만 했다. 졸업을 하면 하고 싶었던 염색과 파마를 할 수 있고 술집에 가서 술도 마실 수 있고 운전도 하며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넥타이를 매고 회사를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염색과 파마는 학생 때의 두배 가격을 내고 해야 했으며 뿐만 아니라 노래방도 만원에 한 시간이던 곳이 고작 몇 달이 지났다고 이만 원이라는 두배 가격이 되었다. 술집에 가면 안주와 술을 같이 시켜야만 해서 갓 미성년자 딱지를 뗀 나에게는 자주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나는 성인이고 취업해서 돈 벌면 되지"라고 생각한 나는 정말 한심 그 자체였다. 저조한 취업률도 문제였지만 잊고 있었다. 나는 꿈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그렇게 스무 살을 허무하게 보냈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였다. 아르바이트할 곳은 정말 많았다. 하지만 참 웃긴 게 어려서는 그렇게 간절했던 많은 일들이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되어버렸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간절함이 사라진 걸까 아니면 했던 일들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싶었는지. 둘 중 고르자면 후자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찾아보다가 내 레이더망에 걸린 일은 바로 카페 아르바이트였다.
스물한 살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에 지원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직접 일을 해보진 않았지만 힘쓰는 일도 많이 없으며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며 간단하게 말하자면 꿀알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일한 경험은 없지만 다른 일들은 많이 경험한 열정만 넘치는 그런 지원자 중 한 명이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나만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일한 경험이 많고 성실하면 대부분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른 카페에 지원을 하였다. 또 떨어졌다. 도대체 왜 떨어졌는지 직접 물어보았다.
-정말 일 잘할 수 있으며 다른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습니다. 꼭 카페 알바를 해보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른 일에 경험이 많더라도 카페 경력이 있어야 해요.
다른 카페도 다 이렇게 답장이 왔다. 더 경이로운 것은 내가 카페를 몇 번 가보지도 않았으며 이 가격에 그 쓴 아메리카노를 왜 먹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으며 카페를 가도 맛있는 아이스티를 다 먹으면 나가고만 싶었던 것이다. 결국은 카페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도록 할 때쯤 어디선가 연락이 왔다.
-카페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같이 일 해보실래요?
저는 카페 일한 경력이 없습니다.
-원래는 경력이 있어야 바로 일을 할 수 있는데 보조하면서 조금씩 가르쳐드릴게요.
세상에 천사가 있었다면 바로 이런 분을 보고 얘기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면접을 보러 갔다. 프랜차이즈는 아니고 개인 카페였다. 미니언즈가 많이 진열돼있었으며 예쁜 장식품들로 가득 꾸며져 있었다. 아마도 미니언즈를 좋아하시나 보다. 카운터 쪽에는 복잡한 기계들로 가득 차 있었고 홀에는 많은 테이블과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사장님께서는 여자분이셨으며 먹고 싶은 음료가 있냐고 여쭤보셔서 초코 라테를 먹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직접 만드신 초코 라테를 건네시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 왜 카페에서 그렇게 일을 하고 싶으셨어요?
다른 많은 일들을 해봤는데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지원을 했습니다.
- 경력이 없어서 커피를 배우는데 오래 걸리는데 포기 안 하고 계속 오래 하실 수 있으신가요?
당연히 오래 할 수 있으며 최대한 신속하고 열심히 배워서 빨리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카페에서 일하려면 커피맛을 알아야 하는데 커피는 즐겨먹는 스타일인가요?
여기서 말문이 막혔다. 그 독한 커피를 먹지도 않으며 내가 먹어본 커피라고는 설탕 잔뜩 들어간 맥심밖에 없는데 안 먹는다고 하면 일을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커피를 먹는다고 하면 난처해질 것 같았다. 결국은 이렇게 답을 했다.
커피를 즐겨먹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 먹는 건 아니라서 일을 하게 되면 커피를 좋아하게 될 정도로 마셔보겠습니다. 이미 뱉어버린 말이었고 주어 담을 수 없었으며 결국은 일을 하게 되었다.
첫 출근을 했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홀은 보이지도 않고 앞에 보이는 여전히 복잡하고 대충 짐작이 가는 기계들이 작동되면서 나를 기다리는 듯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고 들리는 것들은 커피머신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나를 불안 속으로 밀어붙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가장 거대한 산과 같은 사장님이 나를 반겨주셨다. 단 둘이 일을 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잘하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괜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몇 번의 출근을 해본 후 커피 외의 음료를 만들 수 있고 속도도 빨라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똑같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유가 좀 생겼을 시간에 사장님께서는 나에게 커피를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보조일을 하면서도 기계소리만 들리면 너무 불안하고 못할 것 같았지만 처음으로 스위치를 돌렸을 때 역시나 기계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며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내가 꿈꿔왔던 카페일을 어디서든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리를 극복하고 커피를 여러 번 만들어 보았다.
내가 만든
첫 번째 커피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커피 역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그냥 쓰다.
세 번째 커피는 달랐다. 셨다.
네 번째 커피는 독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커피를 먹어보고 있고 맛을 찾아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확실한 건 내가 이 날 잠을 못 잤다는 것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사장님과 최대한 비슷한 맛을 찾기 위하여 계속 달라지는 것 없은 검은 물을 만들고 먹어보고 버리고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결국 최대한 비슷한 맛이 되었고 그때부터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서 손님들께 판매를 할 수 있었다.
달라진 것은
독한 커피를 나도 모르게 마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독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독하게 노력했다는 것
나는 큰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또 나를 기다리던 것은 스팀기였다. 쉽게 얘기하자면 따뜻한 라테를 만들기 위한 기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친구가 가장 무섭고 소리가 가장 시끄럽다고 나는 생각했다. 온도도 150도를 넘겨야 했으며 가장 예민한 친구다. 나는 이 친구와 친해지기 위하여 매일 내 돈으로 사 와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생각보다 이 친구와는 빨리 친해졌다.
스팀기를 빨리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사장님이 하시는 것을 봐왔고
소리도 매번 듣던 소리라서 두렵지가 않았다.
나는 일을 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커피를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우고 만들어야 하는 시각
항상 기계음을 듣고 익숙해져야 하는 청각
커피 향을 맡아야 하는 후각
스팀기를 사용하면서 손으로 온도를 체크해야 하는 촉각
그리고 가장 중요한 커피맛을 알아야 하는 미각
억지로 끼워 맞춘 듯 하지만 오감을 다 사용한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했지만 한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여유와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기계로 가득 찬 프런트만 보였던 곳이 이제는 손님들이 가득 찬 홀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 잊고 있었다.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느라 나의 앞 날 또는 나의 꿈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조차 할 틈이 없었다.
카페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온다. 그리고 각자 입맛에 맞는 다른 음료를 시킨다. 아메리카노를 왜 이렇게 비싸게 주고 먹는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테이크 아웃해서 가는 사람들은 예외다. 대부분 월세 내는 것처럼 음료를 시키는 동시에 음료값이 아닌 "내가 이 시간부터 이 자리를 몇 분 또는 많으면 몇 시간을 쓰겠다."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신에 입맛에 맞는 음료를 시키는 듯이 전부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손님
두 명 이상 앉아서 수다를 떠는 손님
핸드폰을 손에 쥐고 게임이나 SNS 등을 하는 손님
행복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커플 손님
펜을 잡고 공부를 하고 있는 손님
노트북을 보면서 과제나 공부 또는 일 등을 하고 있는 손님
이 외에 여러 손님들이 많았다. 나는 카페 직원이므로 매일 카페에 와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이 손님들은 자신이 해야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오는 것만 같았다. 그중 거의 매일 오는 손님이 몇 분 계셨고 그 손님들께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고 있어요.
대학생인데 과제가 줄지를 않아요.
그냥 집에 있으면 너무 답답해서 노트북으로 뭐라도 하려고요.
그리고 내가 지켜본 결과 자격증을 따려고 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았다. 각자 사람마다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고 생각해보니 나도 직업에 대한 꿈은 없었지만 하고 싶었던 꿈이 있었던 것이었고 그게 카페 일을 하고 싶어서 이 일을 독하게 배우고 그 꿈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는 또 다르게 혼자 매일 오셔서 카페라테만 마시고 가시는 30대 정도 돼 보이시는 여자 손님이 계셨다. 아침에는 손님이 없거나 테이크 아웃을 하고 가시는 손님들이 대부분인데 어느 날 구석진 테이블에 앉으셨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카페라테를 만들어 드렸고 나는 내가 할 일들을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 손님이셨다. 정말 밝은 손님이신데 울고 계신 것을 보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달려가서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왜 우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가실 때 픽업대에서 죄송하다는 말씀만 하시고 가셨다. 그리고 그 후로 볼 수 없었다.
겨울이 되고 미니언즈로 가득 차 있던 카페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전구를 장식하고 노래도 겨울에 맞는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해가 되는 날 나는 카페를 일 년 일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카페 일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스물한 살에서 스물두 살이 되었고 그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내가 바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커피 만드는 법을 보고 배운 것처럼 나도 손님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보고 느껴서 손님들이 바꿔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은 놀지 않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지가 아닌 흘러가고 있는 하루 또는 그 시간에 뭐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2019년 8월 28일 8시 3분 12초는 평생 돌아오지 않는다. 항상 대부분 사람들은 년 월 일만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몇 시 몇 분 몇 초도 똑같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목표는 있어도 꿈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시간에 게임이든지 운동이든지 취미생활을 해도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은 안 든다. 내가 내 시간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사용했으니까. 하지만 그 시간을 게으르고 허무하게 가만히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있는 돈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미 누군가가 주워갔으니까.
일을 그만둔 나는 직원이 아니라 손님이 되었다. "답답한 카페를 왜 갈까?"라고 생각했던 나는 약속이나 일이 없을 땐 카페에 가는 게 당연하듯 습관이 됐고 "이 쓴 커피를 왜 그 비싼 돈 주고 사 먹어?"라고 했던 나는 다른 것은 못 마실 만큼 완벽한 짝꿍이 되었다.
스물두 살에는 그냥 해보고 싶었던 일
해보고 싶었던 일을 위해 남들처럼 대학에 가보고 싶었고 카페 가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합격을 하였다.
스물세 살에는 내가 일하면서 봐왔던 일
노트북과 책을 들고 카페로 과제나 시험공부를 하러 갔다. 시끄럽지만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싫었고 카페는 시끄럽지만 이상하게 익숙하고 편했다.
이 기간에는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분위기 조성도 됐다.
스물네 살에는 작년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심화된 것
작년과 다름없이 카페로 노트북과 책을 들고 공부하러 갔으며 한 가지 추가된 건 과에 대표를 해보고 싶었고 동아리를 들고 싶었다. 그래서 과대표를 했고 동아리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자꾸 교수님한테 전화 온다. 바쁘다.
스물다섯 살에는 다시 카페 직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바로 취업하고 싶지 않았다. 못한 거일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카페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카페 아르바이트를 구하기가 너무 쉬웠다. 그리고 금방 일을 적응했다. 카페 직원이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쉬는 날에는 손님이라는 것. 친구를 만나도 카페에서 만나는 것 같고 그냥 편한 쉼터다. 3개월 정도 일하고 그만뒀다. 이번에는 책은 없고 노트북만 들고 카페를 갔다. 드라마와 영화에 푹 빠진 것이다.
스물여섯 살 현재
취업을 했었다. 외울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학교 다닐 때처럼 카페로 가서 회사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일하는 것도 잠시 전염병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돈으로 태블릿을 샀고 게임에 빠졌다. 낮에는 게임하느라 정말 바쁘고 오후에는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느라고 정말 바쁘다.
알고 보니 나 정말 바쁜 사람이다.
지금 이 글을 읽어본 사람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고 무엇이 관심사인지는 나는 모를 수밖에 없다. 알려줄 거면 나처럼 이렇게 길게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럼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글을 읽고 공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에 의도는 걱정이나 할 일에 대하여 복잡할 때 혼자 카페에 들려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봤으면 좋겠다. 다들 그 걱정이나 일을 잠깐이나마 극복하려고 뭐라도 하고 있으니까.
나는 카페를 다닌 지 약 6년이 되었다. 이곳에서 화가 나는 일도 많이 봤고 겪었으며 슬픈 일도 많이 있었다. 이건 비밀인데 카페 일 할 때 새로 산 노트북이 일주일도 안돼서 기계에 긁혔던 일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울은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비밀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이곳에서 화나는 일, 슬픈 일 보다 웃은 일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이 곳에 오면 내 걱정이 무엇인지 복잡한 일이 무엇인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들고 고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매번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힘든 순간을 잠깐이라도 잊기 위해서 여행을 가곤 한다. 물론 바다나 산으로 여행을 가면 좋겠지만 곧장 여행을 가기에는 부담도 되고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저렴하고 가까운 여행지로 카페를 들려보면 어떨까? 좋은 여행이 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