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한 번쯤은 생각해봤어요?
우리나라는 5월이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가정의 달이기도 하고 5월에 결혼하면 행복하다는 말도 있어서 5월의 신부라는 뜻도 생긴 것 같아요. 날씨도 당장 소풍 가기 딱 좋은 날씨이기도 하고요. 저는 8월에 태어났어요. 제가 태어나던 날은 장마가 끝을 내리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달이였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일기장에 손글씨로 또박또박 글씨를 썼어요. 처음에 년, 월, 일, 날씨, 기상한 시간, 취침한 시간까지 다 적었어요. 약간 밀려서 전날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었고요. 일기 써보신 분들은 다들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일기와 비슷하게 인적사항을 적을 때 본인의 생년월일은 다 알고 계시지만 딱 거기까지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다들 항상 한 번쯤은 부모님께 물어봤던 질문이 있을 거예요. "나 몇 시에 태어났어?" 태어난 시간은 모르니까요. 근데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고 궁금해본 적도 없었을 질문이 하나 더 있어요. 오늘이라도 한번 여쭤보세요. "내가 태어났을 때 날씨는 어땠어?" 몇십 년이 지나도 부모님은 그날을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1995년 8월 28일 오후 3시 45분 날씨는 맑음
어렸을 때를 기억해보면 많이 생각은 나지 않으시겠지만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한 가지씩은 갖고 계실 것 같아요. 저는 다섯 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댁에서 잠깐 맡겨진 적이 있어요.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새벽이었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밖으로 뛰쳐나와서 울었거든요. 그 날은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어요. 신기한 건 그날 제가 우는 모습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는 것은 빗줄기가 보일 정도로 너무 뚜렷하게 기억이 나네요. 그날은 정말 많이 슬펐나 봐요. 비가 올 때면 아직도 그날이 자주 생각이 나요. 물론 오늘도 마찬가지고요.
비는 정말 사람에게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날씨 같아요. 특히 감정에 많이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그중에 슬픔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냥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비가 오면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숨어있던 슬픈 감정들이 마구 생각나고 그러든요. 헤어진 연인이나 안 좋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파고들어요.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죠. 그리고 그것 또한 추억으로 넘겨버리세요. 비가 그치면 알아서 다시 숨어버릴 거예요.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비가 오면 파워레인저가 변신하는 것처럼 우비를 입고 운동화 대신 장화를 신고 거기에 우산까지 쓰고 유치원을 갔어요. 무장을 하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다음날이면 항상 감기가 걸려서 병원에 가서 주사 맞은 기억이 있어요. 강조하는데 울지는 않았어요.
초등학교 때는 우산은 총이었고 우비는 망토였어요. 벌써 장난꾸러기인 게 눈에 보이죠? 친구들끼리 밖에 나와서 우산은 쓰지도 않고 총알도 없으면서 총 인척 피슝 하고 쏴버리면 친구는 또 그거에 죽는 척하면서 놀았어요. 우비는 망토여서 잠그면 안 돼서 집에 오면 항상 엄마 속이 터졌어요.
중학교 때랑 고등학교 때는 우산을 잘 쓰고 다녔어요. 근데도 등교할 때는 뽀송했던 교복이 하교할 때는 체육복을 입고 가거나 대충 덜 마른 교복을 입고 집에 갔어요. 비 오는 날은 비 맞으면서 축구하는 게 묘미였거든요. 골이 안 들어가서 진짜 속이 터지는 줄 알았는데 집에 가니까 또 엄마 속이 터졌어요.
성인이 돼서는 잘 쓰고 다녀요. 어렸을 때는 어떻게 비를 맞고 다녔을까 의아할 정도로 한 방울이라도 안 맞으려고 우산 속에 숨어 다니거나 일정이 없는 날에는 나가기도 싫어서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려고 해요. 비 오는 날에 유일하게 나가고 싶은 날이 있긴 해요. "파전에 막걸리"
태어났을 때부터 비는 항상 같이 다녔던 것 같아요. 여름에 눈이 오진 않지만 비는 사계절 내내 내려요. 그래도 가끔은 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마음이 복잡하거나 울적할 때 비가 내리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비가 멈추면 개운하거든요. 비 맞으면서 울어본 사람도 분명 있을 거예요. 항상 비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니까 가끔 만나는 친구처럼 의지해보는 건 어때요. 미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든든할 때도 있는 친구처럼.
비가 오면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
비올 때 아니면 언제 또 감정에 솔직해질라고요.
속상하거나 슬픈 일 있으면 조금만 견디다가 비올 때 다시 생각해보기로 해요.
힘들어하지 말기로 해요 우리.
금방 맑아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