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ㅡ25
나는 가끔 난처할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긴급호출도,, 일정변경도,
업무 지시도 아닌, 정말 아무것도 아닌 퇴근길 차 안.
거기서 불쑥… 회장님의 혼잣말이 시작된다.
“우물우물, 웅얼웅얼”으쌰~허헛 “으쌰.. 슈~슉”
“꼬물꼬물.. 훌떡훌떡” 구시렁..~
처음엔 이게… 나한테 말하는 건지, 그냥 혼잣말인지 헷갈린다.
어쩔 땐 조곤조곤, “아"오늘 수고 많았어요"한 과장~
그럴 땐 당연히, ‘아~나한테 하신 말씀인가 보다’ 싶어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또 어쩔 때는, “그놈 참 말을 안 듣네, 흐음…”
갑자기 그러신다.
나한테 하신 거면 꽤 섭섭한 말이다.
근데 또 그 말투가 묘하게 사극 톤이다.
마치 조선의 왕이 무능한 신하를 나무라는 것처럼.
저번 퇴근길에도 그랬다.
회장님은 창밖을 보며 중얼중얼 뭐라 하셨다.
“하… 참, 이게 이게.. 왜 이 모양이지..!..?"
“네? 저 말씀하신 겁니까?”
“아닐세.. 아니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앞을 봤다.
음소거된 회장님의 독백은 계속 진행 중,
가끔 그중 일부가 들린다.
“이대로 두면.. 안 되는데… 어디서부터..,
전화를.. 부사장인가.. 전화를...”
“…….”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적당히 집중력은 끄고 고개만 끄덕였다.
근데 또,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과장.”
“네!”
“내 말 안 들려?”
어라? 이건" 또 나한테 한 말이다.
당황해서 눈을 깜빡이며 대답한다.
“아, 예! 알겠습니다.. 방금...”
“뭘 들었는데?”
“…….” ㅎ ㅎ
거기서부터는 그냥 웃었다.
그냥, 웃는 게 제일 좋은 답이니까.
또 한 번은 이동 중에, 뒷자리에서 흐릿하게 들리는 회장님의 목소리.
“추어… 추워…”
나는 얼른 룸미러를 힐끔 보며, 조심스럽게 여쭸다.
“아… 추우신가요? 히터 좀 높여드릴까요?”
그랬더니, 한참 뜸 들이시다가 툭 던지는 말씀.
“아니… 점심... 추어탕을.. 먹어야 하는데… 예약을..
...?”
그.. 그 순간, 미지근한 정적만 맴돌았다.
진심인 건지, 농담인 건지, 늘 그 중간 어딘가에서 혼자만의 회담을 이어가신다.
이쯤 되면 헷갈리는 게 아니라,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내가 알아서 구분한다.
회장님이 내게 말을 걸면 목소리 톤이 0.5도쯤 높아진다. 음성 분석기도 못 느낄
정도로.”베이스와 바리톤 그 중간 어느쯤이다. 그게 없으면… 그냥.. 혼잣말이다.
그러니까 요즘엔 이런 상황이 오히려 편하다. 이상한 말투도, 갑자기 반말로
바뀌는 스타일도, 중간에 내가 혼잣말에 개입해 버리는 바보 같은 순간도.
예전엔 매번 놀라고 당황하고 실수했는데,
지금은… 그냥 다 괜찮다.
사람 사이의 거리란, 그렇게 익숙함으로 좁혀지는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던 그의 말투와 표정,
이젠 마치 오래된 라디오 주파수처럼
살짝 잡음이 있어도… 그게 오히려 더 정겹다.
불편했던 것도, 이상했던 것도 결국엔 익숙해지면 다 편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서, 나도 가끔 웃음이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