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ㅡ30
새벽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을 시원하게 뚫고 달린다. 새벽길은 한산하다. 오늘은 그린세미나“ 서울 본사 전 임원이
총출동하는 날, 창밖엔 잔잔한 빗줄기. 누가 ‘고운 입자’ 모드로 샤워기를 켜둔 것처럼. 비는 음산하게 내린다.
평소라면 무음으로 달렸을 시간. 하지만 오늘은 왠지, 오디오를 켰다. 볼륨은 3,
Amy Winehouse"의 저음이. 차 안을 부드럽게 적신다. “Back to Black”
비와 재즈 사이 어딘가, 이상하게도 잘 어울린다. 스티어링 휠을 감싼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차는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그렇게 골프장 진입로에 들어섰다.
빗길에 고생했어요"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린다.
그칠 듯 말 듯 잔잔히 내리는 빗줄기 아래,
무광 방수 재질의 카키색 골프웨어, 버건디 컬러 이너는 눅눅한 날씨에도 어디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선을 유지했다.우산 없이, 망설임 없이, 그는 그렇게 클럽하우스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는, 직원식당으로 간다.
얼음만 동동 떠 있던 텀블러, 그 안에 시원한 물을 채운다. 물 한 모금 마신 뒤, 나는 걷기 시작했다. 혼자 골프장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페어웨이와 그린에서 살짝 벗어난 사이드. 말끔히 다듬어진 그 풍경 속, 조금 벗어나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새벽을 지나간 빗줄기는 땅 위의 결을 부드럽게 눌러놓았다.
잔디는 말없이 수분을 안고 있었고, 물기를 먹은 낙엽들은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밟는 느낌보다 미끄러지는 감촉이 먼저였고, 나는 작은 휘청임 속에서 몸의 균형을
무의식처럼 다잡았다. 물기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아직 땅 위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Amy Winehouse"의 “Back to Black” 뮤직비디오]
그렇게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뭔가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풀숲 사이, 조용히 박혀 있는 골프공 하나. 사람 눈엔 잘 띄지 않을 위치다.
혼자 마음속으로 대사를 친다,
“….너 여기서 뭐 해?”
“너, 친구들 없어?.. 아무도.. 널 안 찾아?”
주인도, 캐디도, 아무도 못 찾은 그 공. 아니면, 애써 찾지 않았을 수도.
평화롭고 조용한 숲길 속에 너무 밝다. 그게 문제였다. 너무 예뻐서. 너무 눈에 띄어서. 그래서 이상하게…
이질적이다. 자연은 모난 걸 숨기고 조화롭게 감싸는데 혼자 핑크빛을 띠고 있으니, 그 존재가 더 눈에 띈다.
그건, 이상하게도 나와 닮아 있었다.
모두가 이곳이 자기 자리라 믿고, 뿌리를 내리는 동안 나는 마치 어딘가를 향해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 같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이름 없는 손님처럼. 늘 어딘가 ‘조금 벗어난 자리’에 있는 듯한 그 느낌.
나는 골프공을 조심스럽게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너 오늘은, 나랑 같이 가자.”
어쩌면 그건, 내가 나를 데려온 하루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