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던 밤, 블랙박스는 기억하고 있다"
늦은 밤, 삼청동.
그날도 나는 늘 그렇듯 차 안에 앉아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다. 대기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뭔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익숙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집중이 잘 안 됐다.
오디오북 속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지던 차 안, 바깥에선 비가 오다 말다,
다시 오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차창 너머, 골목은 젖은 담벼락과 나무들 사이로 숨을 죽인 듯 조용했고,
내리던 비는 살짝 멎은 듯했지만, 습기가 온몸을 감싸왔다.
그때,
코끝을 찌르는 묘한 냄새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생선 비린내 같기도 하고,
오래된 담배 냄새 같기도 했다. 축축하게 젖은 먼지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느낌.
닫힌 차창 안 어딘가로 그 냄새가 새어 들어오는 듯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비 오는 날 특유의 도시 냄새려니 했고, 차 안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한정적이니까.
하지만 그 냄새가 점점 짙어질수록, 몸도 이상해졌다.
숨이 약간 가빠졌고, 어깨가 자꾸만 굳어갔다. 뒷덜미가 서늘했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천천히 흘렀다. 갑자기 소변이 마려운 느낌까지 밀려왔다.
묘했다. 몸이 아니라 분위기가,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차 본넷 위로 뭔가가 휙~스쳐갔다.
고양이? 쥐?
하지만 그 움직임은 너무 컸고, 너무… 사람 같았다.
눈으로 좇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상했다.
가슴은 먹먹했고, 어쩐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뭔가를 껴안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시동을 걸었다.
공용 화장실이나, 스타벅스 같은 공간을 찾고 싶었다.
잠깐만이라도, 이 공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전원 소리와 함께 계기판이 깨어났다.
차량의 전조등이 앞을 비추는 그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라이트 앞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 같은 것.
긴 젖은 머리, 어깨를 푹 늘어뜨린 몸.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만은 명확했다.
난 숨을 삼켰다.
순간적으로 라이트를 껐다.
어둠. 잠시의 정적.
엔진 소리도 멎은 것 같았고,
차 안에선 내 심장 소리만 들렸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이 떨렸고, 입 안은 바싹 말라왔다.
몇 초 후, 나는 다시 라이트를 켰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골목, 적막한 벽면,
젖은 자갈과 바닥에 반사된 전조등의 빛.
미친 걸까.
꿈인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는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확인하지 말걸’이란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미
손은 메모리 카드의 화면을 재생하고 있었다.
재생된 화면은 몇 분 전 내 라이트가 켜졌던 시점을 보여줬다.
그리고—
보였다.
그녀가. 아니 그것이..
희미하게.
전조등 아래 서 있는, 그 모습이..
정지된 프레임 속에서,
그 형체는 분명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은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건 웃음이 아니었다.
표현할 수 없는 표정.
사람 같지만, 사람 같지 않은.
나는 화면을 천천히 껐다.
“비 내리던 밤, 블랙박스는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