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는 말이 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온다.
이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선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다. 월급날 월급이 들어올 때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길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었을 때 더 기쁜 것처럼,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불행을 미리 안다면 그 크기가 엄청날 것이다.
우리가 불행이 닥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에는 결국 견디고 감내하지만, 예고된 불행은 그 순간 더 큰 불행의 시작이 된다. 만약 당신이 5년 후 암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상상해 보라. 지금부터 5년 동안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마 암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에서 시달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행복은 더 크게 누리고 불행은 감당할 수 있는 존재로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진진한 그리고 견딜 만한 탐험이다.
그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 책에서 삶의 태도는 ‘회의주의자’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글이 기억이 난다.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회의주의적인 삶의 태도’란,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려 애쓰는 태도라고 말씀하셨다. 근거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삶의 태도라고 하셨다.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캘리포니아 공대 강연에서 말했다.
다시 설명을 덧붙이면 이 말은 과학자들은 이 모순적인 두 가지 태도를 모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가설이든 쉽게 믿지 않고 철저하게 의심하는 태도와 동시에 세상에서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고 실제로 가능하다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처음부터 비과학적이라고 단정 짓고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진실을 외면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늘 꼼꼼히 따져보고 의심하는 동시에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열린 태도를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미신을 믿는다. 믿지 않으려 하는데 안 믿으면 왠지 찜찜해서 믿게 된다. 미래를 내가 통제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불안할 때 더 미신을 믿게 된다. 미신은 오히려 사회적 성취가 높거나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더 잘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노력하면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원인을 찾아서 노력하면 이것이 상황을 개선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미신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선의 노력이 오히려 적다. 그렇기에 미신을 더 의지하게 보인다.
신문 일간지에 ‘오늘의 운세’가 나온다.
많은 현대인들이 믿지 않지만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고 그 운세를 믿어본다. 비합리적인 사고라고 알면서 믿는다.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우리는 더 지성인답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궁합과 사주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우리의 행복을 스스로 결정지으며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이미 아는 복 달아나는 행동들을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라.
책상에 앉아 다리를 떨지 말아야 하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책상이 흔들려서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다. 집이나 현관문에 종을 달아놓으면 좋은 복만 집에 들어오고 나쁜 잡귀는 종소리가 물리쳐준다는 믿음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종을 달아놓을 만큼의 정성과 복을 기원하는 간절함이 있는 사람에게 당연히 복이 들어올 것이다. 또 신발을 선물해서 연인과 헤어진 게 아니다. 원래 연인들은 다양한 이유로 헤어진다. 신발 때문이 아니라 헤어질 이유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이름을 써도 안 죽는다. 진나라 진시황이 황명으로 빨간색 글씨를 금했던 그 시절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였기에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안 된다는 미신이 생긴 것으로 안다. 이렇게 비이성적인 미신에 우리의 삶이 휘둘리지 않도록 지성 주의자로 또는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살아야 한다.
곧 청년이 되는 아들을 생각하며 청년들이 알면 좋을 내용들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청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지혜를 글로 남기고 있으며 책 출간도 소망하고 있습니다.